이란과 적극 소통 의미 없었다…'나무호' 피격에 강경 대응 불가피
정부는 "공격 주체 예단할 수 없다"지만 '혁명수비대' 소행에 무게
정부 '로키' 대응 모드지만…"강경 대응 필요" 여론 커져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 중이던 한국 선박 'HMM 나무'호에서 발생한 폭발 및 화재 사고가 이란의 공격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우리 정부는 중동사태 발발 후 동맹인 미국과 에너지 분야의 핵심 이익이 걸린 이란 사이에서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는데, 만약 이란이 의도적으로 한국 선박을 겨냥한 사실이 최종 확인된다면 강경 대응이 불가피할 것으로 11일 예상된다.
전날인 10일 외교부는 '미상의 비행체' 2기가 나무호를 공격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 합동조사단이 지난 8일 두바이항으로 예인된 나무호에 파견돼 CCTV와 나무호의 파손 상태 등을 확인하는 현장 조사를 벌인 끝에 나온 잠정 결론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3시 30분쯤 미상의 비행체 2기가 나무호 선미 좌현의 평형수 탱크 외판을 약 1분 간격으로 두 차례 타격했다. 이로 인해 좌측 선미 외판이 폭 5m, 깊이 7m가량 부분까지 훼손됐으며, 선체 안의 프레임은 내부로, 선체 외판은 외부 방향으로 돌출 및 굴곡됐다고 한다.
다만, 외교부는 "비행체의 정확한 종류와 공격 주체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누구의 소행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비행체가 1분 간격으로 두 차례나 같은 곳을 타격했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나무호를 타깃으로 정교한 공격을 가했음을 시사한다. 기관실이 있는 선미를 공격한 것 역시 배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한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주요 공격무기로 내세워 온 중소형 드론의 공격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또한 나무호가 피격된 날, 사고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중국의 대형 정제유 운반선 한 척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상선이 공격을 받은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 역시 이란이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을 구출하기 위해 진행한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을 막기 위해 해협 내에 있던 다수의 선박들을 공격했을 가능성을 키우는 대목이다.
전날 외교부가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를 청사로 불러들이고, 미국 주도의 해양자유구상(MFC)에 동참하는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이란 측에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고 앞으로 미국 측 제안에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사실상 이란과의 외교적 관계를 전면 수정하고, 미국의 군사적 기여 요구를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평가한다.
한국은 중동사태 이후 이란과의 외교적 소통에 가장 많은 공을 들여온 나라 중 하나였다. 정병하 외교장관 특사는 지난달 약 2주 동안 현지에 파견돼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장관 등 고위급 인사들을 만났다. 전쟁 이후 외국의 특사가 직접 이란을 찾은 사례는 한국이 유일했다.
나무호 화재가 발생하기 불과 이틀 전에도 양국 외교장관 간 통화가 이뤄졌으며, 일련의 소통을 통해 이란 측은 한국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 문제를 '잘 살피겠다'라는 입장을 우리 측에 거듭 밝혔다. 하지만 이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양국 관계는 이번 나무호 사고를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과 이란은 에너지 협력 등을 토대로 나쁘지 않은 관계에 있었지만, 만약 이번 사고와 관련해 이란 측 책임이 명확히 확인된다면, 정부 입장에서도 단계적인 조치들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교수는 "우선 정부 차원에서 이란을 향한 규탄 성명을 내고, 어제처럼 이란 대사를 비공식적으로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공식 초치를 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방안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제 공은 이란에 넘어간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란 측의 공격이 맞더라도 이는 이란 내부에서 협상파인 행정부와 강경파인 혁명수비대(IRGC) 간의 불협화음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나무호 사건은 해외에 고립된 우리 국민의 생명 문제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지금은 원칙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이란이 즉각 사고에 대한 인정과 사과, 나아가 명확한 재발 방지 대책까지 제시한다면 갈등의 극단적 고조를 막을 여지가 있지만, 이란이 계속 책임을 회피한다면 우리 정부도 보다 강경한 대응책을 고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원곤 교수는 "이란이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 경우 한국은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더 적극 동참하거나 또는 독자적인 제재를 가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도 있다"라고 제언했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을 향한 미국 측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란이 의도적으로 한국 선박을 공격한 것이라면 한국도 '피해 당사국'이 되는 만큼 파병에 동참할 확실한 군사적 명분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한국 선박 26척의 안전 문제와, 중동사태 종결 후 원유 수입 등 에너지 협력도 한국의 국익에 직결되는 큰 문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병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파병은 한국에게 군사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라며 "현재로서는 이란의 책임이 확인된다면,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받아내는 것, 그리고 다국적 연합체에 동참하는 것 정도가 현실적인 조치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plusyou@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