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 사용 권한, 김정은에게"…유고시엔 북핵 운명 알 수 없다
헌법에 처음으로 핵 사용 조건과 권한 명시
'핵=김정은 체제' 공식화…한미 '참수작전' 차단 노림수도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북한이 핵무기 사용의 조건과 권한을 처음으로 헌법에 명시했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유고 등 유사시 핵 사용 권한을 별도의 지휘기구에 위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 '최고지도자가 없어도 핵 보복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는 분석이 7일 제기된다.
북한은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 15기 첫 회의를 통해 개정한 헌법 제89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있다'고 규정했다. 이어 '국무위원장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핵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북한의 국무위원회는 청와대와 행정부의 역할을 하는 국정 운영 기구로, 김 총비서가 국무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기존 핵보유국들도 군 통수권자의 핵 사용 결정 권한을 보장하고 있지만, 북한처럼 이를 헌법 조항으로 명문화한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독재 국가인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핵 지휘권을 헌법에 못 박은 것은 핵을 체제 존립의 근거, 국가의 정체성으로 부각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개헌을 통해 '핵=김정은 체제'라는 공식을 정립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김 총비서의 유고 시엔 북한의 핵무기 사용은 불가능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북한은 이미 지난 2022년 9월 제정한 핵무력정책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에서 최고지도자와 지도부의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핵무기 사용이 필요할 경우 자동적으로 핵 반격을 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의 3조 '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의 3항에는 "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 방안에 따라 도발원점과 지휘부를 비롯한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번 개정 헌법에 핵 관련 내용이 들어간 것은 핵무력정책법의 취지와 정신을 부각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헌법 개정과 무관하게 이미 김 총비서의 유고 시에 대한 북한 나름의 대응 방안을 마련한 셈이다.
북한은 2023년 '핵 방아쇠'라는 이름의 핵무기 작동 체계를 마련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핵무기 관리에서부터 핵무기 사용을 위한 작전 수립을 위해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 사용을 위한 경보 발령 단계부터 지도부의 논의→김 총비서의 명령 하달→핵무기 발사를 위한 각 상황별 판단 기준과 전 과정을 체계화한 시스템으로 추정된다.
'핵무력정책법'에는 국무위원장이 임명하는 이들로 구성된 '핵무력지휘기구'가 핵무기 사용을 위한 모든 과정을 보좌한다고 돼 있는데, 이는 유사시 핵무력지휘기구가 김 총비서 대신 핵무기 사용 명령을 하달하는 주체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번 개정 헌법에도 북한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핵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다만 핵무력지휘기구의 구성원 등 실체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가 없다.
이같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 조건 및 권한 설정은 이른바 '참수작전' 등 북한의 최고지도부를 겨냥한 암살 작전이 단행되도 '핵반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해 외부의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사망해도 핵무기는 작동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선제공격을 막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와 이란의 갈등을 보면서 얻은 '반면교사'일 수도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와 달리 2기 때는 이란의 핵시설을 타격하고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와 지도부 상당수를 제거하는 강수를 두며 이란의 '궤멸'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만 실제 김정은 총비서가 사망하는 등의 상황이 되면 북한의 핵 반격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될지는 미지수다. 북한 지도부에 대한 '참수작전'이 단행될 경우 김 총비서뿐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북한 지도부의 의사결정 능력을 무력화하는 방안이 동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미의 감시망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설 대부분을 감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도 이를 의식해 '국가핵무력지휘기구'의 구성원 등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사 시 '반격의 최후의 보루'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기 사용 권한을 김정은에게 극단적으로 집중시키면서도, 동시에 김정은 없이 핵 사용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도입한 것은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신승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 유고 시에도 핵 보복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 한미의 참수작전을 억제하려는 목적이 크다"며 "급박한 유사시 핵 통제권에 대한 공백을 막기 위한 내부 관리 차원의 고민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김정은 유고 상황에서도 핵 전쟁이 가능하다는 공포를 심으려 하지만, 실제 핵 사용 결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북한 체제 역시 치명적 보복에 직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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