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삼풍 참사' 다음 날 "언론의 과장 보도도 문제"
[외교문서 공개] 삼풍 붕괴 다음 날 외교 행사에서 "언론 자유 지나쳐"
美측 면담서도 "재해도 대통령 책임이라는 건 유교적 관습"
- 노민호 기자, 유민주 기자, 정윤영 기자, 임여익 기자,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유민주 정윤영 임여익 김예슬 기자 = 1995년 6월 29일 총 144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외국 인사에게 이 사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 30년 만에 확인됐다.
외교부는 31일 생산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해제 된 외교문서 총 2621권(약 37만 쪽) 분량을 일반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 중엔 1995년 6월 30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한국을 찾은 바누아투의 막심 칼롯 코르만 총리가 청와대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담긴 문서도 포함됐다.
1995년 7월 1일 작성된 당시 외무부의 '코르만 바누아투 총리 방한 결과 후속조치' 문서에 따르면 코르만 총리는 면담 전날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한 위로 서한을 김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화 과정에서 코르만 총리에게 "세계에서 경제가 발전된 중요한 나라치고 사건이 없는 나라가 없다"며 "경제가 발전하다 보면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100% 완전한 나라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도 사건이 많이 나고 있으며 일본도 심각할 정도로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바, 예외 없는 나라가 없다"며 "물론 사건이 없는 것이 제일 좋지만, 공업화로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이며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밝혔다고 문서에 명시돼 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아니라 '국가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한' 사고라는 운명론적 인식을 가졌다는 해석이 가능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삼풍 사고가 부실공사와 제때 고객과 직원을 대피시키지 않아 발생한 '인재'로 결론났다는 점에서 사건 초기 김 전 대통령의 상황 인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은 삼풍 사고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도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지나치게 보장돼 있고, 민주주의가 발달해 있어 언론들이 너무 많이 과장되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라고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7분에 1건씩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는데 미국의 언론들이 이 사건을 전부 다 보도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반면 한국에서는 몇 달에 한 번씩 큰 사건이 발생하나 우리 언론들은 일단 발생했다 하면 엄청나게 과장해 보도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발언은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2월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에 이어 1995년 4월 대구 지하철 공사장 폭발 사고를 겪은 김 전 대통령이 삼풍백화점의 붕괴까지 발생하자 정부에 대한 민심 악화를 우려하다 '솔직한'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론은 김영삼 정부에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붙이기도 했다.
이러한 김 전 대통령의 우려는 워런 크리스토퍼 당시 미 국무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이뤄진 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풍 사고 약 3주 뒤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차 미국을 방문한 김 대통령은 연설 전날인 1995년 7월 25일 크리스토퍼 전 장관과 만났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삼풍백화점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며 "2차 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진주만 전쟁을 잊지 말자'는 슬로건을 통해 미국민을 단결하는 계기를 만들었듯 우리 국민도 삼풍백화점의 참사를 잊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은 "우리는 유교적 풍속 때문인지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모두 대통령 책임인 것으로 돌리는 잘못된 관습이 있는데, 최근 이러한 경향이 변하는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외교문서 공개 규칙' 따라 생산된 지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를 검토를 거쳐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 32차례에 걸쳐 1948~1994년에 생산한 문서 4만여 권(570여만 페이지) 분량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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