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독립운동가에 '파리장서운동' 이명균·장석영·유진태 선생 선정

2·8선언 및 3·1운동 계기 유림 137명 서명…국제사회 독립 호소
파리장서, 한일병합 부당성 비판·한민족 독립국 권리 강조

국가보훈부는 3·1운동 후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전달해 한일강제병합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한 '파리장서운동'의 이명균, 장석영, 유진태 선생을 2026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사진은 국립한국문학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파리장서.2026.3.31./ⓒ 뉴스1(국가보훈부 제공)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국가보훈부는 3·1운동 후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전달해 한일강제병합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한 '파리장서운동'의 이명균, 장석영, 유진태 선생을 2026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파리장서운동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에서 한국 유림이 국제사회에 독립을 청원하고자 전개한 외교 독립운동이다.

2·8독립선언과 3·1운동으로 독립운동이 확산하면서 유림 세력 또한 독립청원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장문의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를 작성하고 전국 유림 대표 137명의 서명을 받아 국제사회에 발송했다.

3·1운동이 국내외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독립 의지를 표출한 사건이라면, 파리장서운동은 이를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호소한 시도였다고 평가된다. 특히 장서운동은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제국주의 지배의 부당성을 국제 여론에 호소한 점에서 보편적 가치 실현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장서에는 한일 병합의 강제성과 부당성을 비판하고 한국 민족이 독립국으로서 존속할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음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겼다.

장서운동은 단순한 독립 청원을 넘어 국제 여론을 독립에 활용하기 위한 독립운동의 성격을 갖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장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서 작성, 서명자 모집, 전달 경로 확보 등 조직적인 활동이 이뤄졌으며 관련 인물들은 일제의 탄압으로 체포·투옥되는 등 큰 희생을 치렀다.

이명균(1893~1923년)은 경북 유림으로 광흥학교 설립 후완, 조선총독 암살 시도 등 적극적인 항일 운동을 전개하고 3·1운동 이후에는 장서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조선독립후원의용단에서 활동하며 자기 재산을 처분해 독립자금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이 과정에서 체포돼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장석영(1851~1926년) 선생은 파리장서 초안을 작성한 인물로, 3·1운동 소식을 접한 뒤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을 제출하자는 제안에 호응해 장서를 집필했다. 그의 초안은 일본의 침략을 강하게 규탄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운동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했다. 이후 체포돼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에도 항일운동에 계속 투신했다.

유진태(1872~1942년) 선생은 조직과 연계를 담당한 실무 핵심 인물로, 평안도 지역 서명자를 모집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 추진되던 장서운동을 연결·통합하는 역할을 했다. 또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연계해 장서 전달을 지원했다. 그는 1920년대 국내 독립운동단체 신간회에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정부는 이명균, 장석영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유진태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