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지원 부정적이던 30년 전 美...韓 대통령 연설문도 '수정' 요청
[외교문서 공개] 김영삼 전 대통령 1995년 미 의회 연설 비화
'북미 직거래' 우려 속 소외 관측에…金, '원칙 외교' 강조도
- 유민주 기자, 노민호 기자, 정윤영 기자, 김예슬 기자,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노민호 정윤영 김예슬 임여익 기자 = 지난 1995년 7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 국무부가 한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문 초안 중 '대북 정책' 관련 문구를 직접 수정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당시 대북 지원 예산에 비판적이었던 미 의회 내 반대파들에게 예산 삭감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미국 정부의 치밀한 정세 관리가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31일 생산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해제된 외교문서 2621권(약 37만쪽)의 주요 내용을 일반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 중에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자, 이듬해 김영삼 대통령이 한미관계 강화 차원으로 7월 22~28일 미국 방문을 준비하는 내용의 자료들이 포함됐다.
미 국무부는 김영삼 대통령의 미 의회 상·하의원 합동연설이 있기 전날인 25일 한국 측에 연설문 일부 수정을 '간곡히' 요청했다. 문제의 문구는 "남북 대화가 제네바 미북 합의 이행에 긴요하다는 내용의 결의를 의회가 채택한 데 대해 사의를 표한다"라는 부분이었다.
국무부 측은 당시 상원이 아직 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한편, 내부 정치 상황을 고려한 우려를 전달했다. 미 의회 내에서 경수로 사업에 따른 중유 제공 등 대북 지원 예산(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지원금)에 부정적인 공화당 의원들이 해당 문구를 역이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만약 한국 대통령이 '남북 대화 진전'을 기정사실로 하며 감사를 표했다가,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될 경우 반대파 의원들이 이를 빌미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대북 예산 삭감에 나설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미국 측의 요청을 반영해 해당 문구는 "대통령과 의회가 공히 남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점에 감사한다"는 보다 신중하고 포괄적인 표현으로 수정됐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자, 한국에서는 '통미봉남'(북한이 미국과 직접 소통하고 한국을 소외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제네바 합의는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이후, 미국과 북한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이 경수로 등 에너지 지원(중유 및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제공하기로 한 협약이다.
김 대통령은 방미 기간 내내 '남북 대화 없는 북미 관계 개선은 없다'는 원칙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백악관 공식 만찬과 앨 고어 부통령과의 오찬에서도 한국형 경수로의 대북 지원이 단순한 핵 문제 해결 차원을 넘어 한반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사안임을 짚으며, "원칙에 대한 어떠한 타협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당초 희망했던 한국형 경수로 채택과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보장되는 한 대북 경수로 지원과 관련된 대미 약속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지만, 경수로 문제 해결에도 남북관계 진전 조짐이 보이지 않아 미국 정부의 노력을 당부하기도 했다.
외교부는 1993년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을 제정해 1994년부터 외교문서 공개를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총 32번에 거쳐 1948~1994년까지 생산한 문서 약 4만권(570만쪽)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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