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무역의 거리'로 바뀔 뻔…이란 반발에 유지
[외교문서 공개] 주한이란대사 공식 우려 표명…韓 즉각 '진화'
- 정윤영 기자, 노민호 기자, 김예슬 기자, 유민주 기자,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노민호 김예슬 유민주 임여익 기자 = 한국과 이란 양국의 우호 상징인 '테헤란로'가 한때 '무역의 거리'로 이름이 바뀔 뻔했던 사실이 30년 전 외교문서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무역 중심지로서의 위상에 맞게 이름을 바꾸자는 논의가 제기됐지만, 이란 정부가 직접 우려를 전달하면서 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는 31일 생산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 해제된 외교문서 2621권(37만여 쪽)의 주요 내용을 일반에 공개했다. 이 가운데 1995년 후반 일각에서 '무역·금융 중심지에 외국 도시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테헤란로 명칭 변경 필요성이 제기됐던 사실이 확인됐다.
1995년 11월 '수출 1000억 달러 달성' 기념행사를 준비하던 한국무역협회와 인근 상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며, 코엑스를 중심으로 한 무역 거리의 브랜드화를 위해 테헤란로의 명칭을 무역의 거리로 바꾸자는 주장을 내놨다.
강남 한복판에 이란 수도 이름이 붙어 있다는 점에 대한 정서적 이질감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논의는 국내 언론에도 보도되며 이란 측에까지 전달됐다.
이에 주한 이란대사는 그해 12월 15일 이홍구 국무총리 이임 예방 자리에서 명칭 변경이 양국 우호 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이란 외교 당국 역시 '테헤란로와 서울로는 1977년 양국 합의로 만들어진 상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전달했다.
당시 이란은 한국 원유 수입의 약 14.4%를 담당하는 제2공급국이었고, 교역 규모도 15억 달러에 달했다. 정부로서는 사안을 민감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외무부는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 테헤란로 명칭을 유지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이란 측에는 "실제 개명 추진이 아닌 행사 성격의 논의였다"는 점을 설명하며 오해 해소에 나섰다. 서울시 역시 공식적으로 도로명 변경 청원이 접수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테헤란로의 기원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과 이란은 1962년 수교 이후 관계를 이어오다 오일쇼크를 계기로 협력을 강화했다. 당시 한국은 안정적인 원유 확보가 절실했고, 이란은 인프라 건설과 경제 개발을 추진하며 한국 기업과 노동력이 필요했다. 이후 이란은 한국의 주요 원유 공급국이자 중동 내 핵심 건설 시장으로 자리 잡으며 양국 관계의 축이 됐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1977년 6월 27일 서울과 테헤란은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당시 구자춘 서울시장이 추진하던 '영동지구 개발'의 핵심 축이던 이 도로를 두고, 구 시장은 강남 개발 초기의 황량한 지역을 골람레자 닉페이 테헤란 시장과 함께 둘러보며 '이곳이 서울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시장은 도시 간 우호를 상징할 방안을 논의한 끝에 도로명을 서로 교환하기로 합의했고, 이에 따라 서울 강남의 '삼릉로' 일대는 '테헤란로'로,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조성됐다.
이후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강남역에서 삼성역까지 이어지는 약 4km 구간에 무역센터와 포스코센터 등 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금융·무역 기업이 밀집하며 테헤란로는 한국 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고, 1990년대에는 정보통신 기업과 벤처기업이 몰리며 '테헤란 밸리'로 불리는 산업의 상징 공간으로 발전했다.
이번에 공개된 제33차 외교문서는 총 2621권, 약 37만 쪽 규모다. 외교부는 1993년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을 제정해 이듬해부터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문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 32차례에 걸쳐 1948~1994년 생산 문서 약 4만권(570만쪽)이 공개됐으며, 이번에 공개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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