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법률' 들어 호르무즈 파병 방어…韓에 '참고서' 제시

트럼프 압박에 곤혹스러운 '참전'은 피한 다카이치
韓, '국회 동의 절차' 등 파병 절차 복잡함 부각할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압박 속에서 미국을 찾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파병 압박을 나쁘지 않게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의 법률을 앞세워 '할 수 없는 일'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잘 설명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사실상 파병 요청을 거절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미국으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으며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주시한 정부에게 '참고서'를 제시한 것이라는 관측도 20일 제기된다.

평화헌법·안보법제로 '참전' 막아…일본 내 반대 여론도 '관리'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만난 다카이치 총리에게 "일본이 '나서주길(step up)' 기대한다"라고 밝히며 재차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 대한 군사적 기여를 요구했다. 4만 5000여 명의 주일미군 주둔과 일본의 높은 원유 의존도를 거론하며 군함 파견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에 대해 기자들과 질의 과정에서 "일본 법률의 범위 내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있다"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회담 직후에는 "자위대법상의 요건과 법적 제약을 상세하고 철저하게 설명했다"라고 부연했다.

이는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 전쟁과 무력행사는 불가능함을 명시한 일본의 '평화헌법'(헌법 9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을 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의 파병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다카이치 총리가 이란과 직접 교전할 수 있는 군 전력을 파견하긴 어렵다는 뜻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안보법제에 따라 판단해야 할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 구성요건에 대한 설명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법은 '존립이 직접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라면 전투 지역으로 파병을 할 수 없다. 다카이치 총리는 현재의 상황이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세워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총리 개인의 판단이 아닌 '법의 한계'를 전면에 내세운 구조적 대응으로,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압박을 법률적 문제로 틀을 바꿔 대응해 거절의 명분을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난 2015년 '미국이 이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 중 하나로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를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다카이치 총리의 판단은 정치적 판단의 성격도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4~15일 실시한 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82%가 미국의 이란 공습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90%는 에너지 가격 상승 등 경제적 불안을 우려했다. 파병은 곧바로 정권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대신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을 지지한다는 외교적 메시지와 함께 일종의 조건부 기여에 대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종료된 후 '조사 목적의 자위대 파견'이나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조건으로 소해(掃海·기뢰 탐지 제거)함을 파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두고 다카이치 총리가 직접 참전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피하면서도, 경제 협력과 외교적 지지를 통해 동맹의 균열을 최소화한 전략적 대응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일본에 대해 "나토(NATO)와 달리 일본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려 한다"라고 평가하며 압박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5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연기 구름이 솟아오르고 있다. 2026.03.05. ⓒ 로이터=뉴스1
韓도 '법률 외교' 카드 검토해야…국회 동의 등 '절차적 어려움' 제기 필요

다카이치 총리의 대응 방식은 정부의 입장에서도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 역시 파병을 위해서는 헌법에 따라 국회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을 미국에 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60조는 국군의 해외 파병을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의무화하고 있다. 정부가 의지를 갖더라도 국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파병은 불가능하다.

또 헌법 제5조의 '침략적 전쟁 부인' 원칙과 국방기본법상 국제평화 유지 요건도 카드로 쓸 수 있다. 유엔 결의 없이 진행되는 군사 행동에 대한 참여는 법적 정당성이 약하다는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미 투자 3500억 달러 규모의 경제 협력과 안보 현안이 얽혀 있어, 군사 기여 대신 경제·전략적 기여로 논의의 프레임을 전환할 필요성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역시 다카이치 총리가 109조 원(730억 달러) 규모의 2차 대미 투자 보따리를 들고 간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파병 거부 시 향후 관세나 안보 관련 협상에서의 불이익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올해 11월 상·하원 선거(중간선거) 전까지 각국의 투자를 성과로 내세워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선 대미 투자를 앞둔 한국에 굳이 강한 보복을 가할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공식적인 파병 요청이 오기 전까지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고, 요청이 있을 경우 국회 동의 절차와 준비 기간 등을 설명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무엇보다 한국은 북한 위협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도 중요한 설득 논리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