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국방부 패싱'…문민장관 리더십에 이상 없나[한반도 GPS]

1·29 부동산 정책, 국방부와 사전 조율 부족했던 것으로 파악
'고사성어 전도사' 순수한 칭찬으로 볼 수 없어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박정훈 국방부 조사본부장이 1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국방부 헌법존중 정부혁신 TF 활동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2026.2.12 ⓒ 뉴스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정부의 1·29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현재 군이 관리하는 부지 여러 곳을 '아파트 부지'로 활용한다는 방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에선 '1·29 대책'이 국방부의 위상을 돌아보게 하는 장면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천의 국군방첩사령부와 경마장 부지를 묶어 98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 서울 동대문구 한국국방연구원(KIDA) 부지에 1500가구를 짓겠다는 방안이 이번 대책에 포함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발표 시점에 일본 출장 중이었고, "사전에 국방부와 충분히 조율된 사안이 맞느냐"라는 의문이 여기저기서 제기됐습니다.

부지를 내줘야 하는 방첩사 지휘부도 정부의 계획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KIDA도 정부의 발표 후에야 긴급 대응 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KIDA는 공교롭게도 안 장관의 지역구인 동대문갑에 위치해 있습니다. 동대문구 역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됐다"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하면서 '사전 조율 부족'에 대한 의구심은 더 커졌습니다.

방첩사 해체는 민관군 합동자문위원회 권고사항이지만, 국방부 차원의 최종 확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해체될 경우 신설될 것으로 예상되는 국방안보정보원과 중앙보안감사단의 부지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개편의 구체적 내용이 외부에서 먼저 언급되고, 관련 논의에 속도가 붙은 모습입니다. 국방부가 의사결정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는 의문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KIDA는 국방정책 전반에 관한 체계적 연구와 분석을 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입니다.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과 국가정보원 유관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처럼 정책 부처와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한 곳입니다. 아파트 공급도 필요하지만 국방 관련 시설에 아파트를 짓는다는 발상에 국방부가 쉽게 동의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국방부는 "정부 차원에서 발표된 사안으로, 이전 시기와 대체 부지 등은 앞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방부는 관여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수동적 답변 역시 국방부가 정책 결정의 출발점에서 주도하는 입장에 있는지, 혹은 결과를 전달받는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낳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7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신임 국무위원 및 국세청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5.7.28 ⓒ 뉴스1 이재명 기자

비슷한 장면은 다른 사안에서도 포착됐습니다. 지난 1월 18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방·방산 분야 업무보고에서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방사청을 '청'에서 '처'로 승격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명칭을 국가방위자원산업처로 바꿔 소속을 국방부에서 총리실로 전환하자는 구상이었습니다.

방위산업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무기 획득과 수출, 범정부 안보장비 통합 관리까지 포괄하는 상위 행정 조직으로의 전환 필요성에는 정책적 명분이 있습니다. 다만 이 청장이 안 장관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친 뒤 조율된 입장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옵니다.

산하 기관이 조직 개편이라는 중대 사안을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하는 구조가 굳어진다면, 이는 국방부의 정책 조정 기능이 약화됐고 이른바 '영'이 서지 않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국방부 내부에선 "우리가 패싱당하는 것 아니냐"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옵니다. 작년에는 한미연합훈련 조정 문제를, 최근엔 비무장지대(DMZ) 출입 통제 관련 법 개정 움직임 등에서 다른 부처가 먼저 의제를 설정하고, 국방부는 뒤따라 입장을 정리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인식입니다.

조직 내부 분위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도 있습니다. 안 장관이 '고사성어 전도사'라는 별칭을 듣고 있다는 점입니다. 안 장관은 어릴 적부터 한학을 배웠고, 의원 시절에도 고서를 인용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장관 취임 이후에도 각종 연설에서 사자성어 등 한자 성어를 자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 청사에서 "오늘은 어떤 고사성어가 나올까"라는 말은 자주 오가지만 "어떤 정책 메시지가 나올까"라는 기대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도 들립니다. 이는 칭찬이기보다는 다소 냉소가 섞인 반응에 가깝습니다. 상징과 수사가 정책의 선명함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안 장관은 64년 만의 문민 국방부 장관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취임했습니다. 오랜 국회 국방위원회 활동을 통해 전문성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어진 여러 장면은 안 장관이 정책 결정의 중심에 서 있는지 의문을 낳습니다. 고사성어가 아니라 정책 메시지로 존재감을 보여줘야 할 시점입니다. 문민통제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는, 결국 실질적 성과로 평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