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취소 수순…'고육지책' 근거 찾은 보훈부
공적서 원본 못 찾자 '신청 절차 하자'로 우회…"표적 취소" 비판도
- 허고운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정부가 제주 4·3 사건 당시 진압 작전에 관여한 고(故)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위 취소를 위해 '신청 절차 하자'를 근거로 삼기로 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위 부여의 근거가 된 무공훈장의 서훈 공적서 원본을 찾지 못해 명확한 근거가 빈약한 상황에서, 우회로를 택한 모양새가 되면서 '찍어내기'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국가보훈부는 최근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취소할 수 있는지에 관한 법률 자문을 받았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에 따르면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은 원칙적으로 본인이나 배우자, 자녀, 부모 등만 가능하다. 박 대령의 경우 양손자가 신청을 진행해 절차적 흠결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권오을 보훈부 장관도 지난 21일 MBC 라디오 '시선 집중'에서 "손자분은 신청 자격이 없다"라며 "잘못된 절차를 취소하고 이를 보훈심사위원회에 다시 올려 (국가유공자 등록을) 취소하든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부는 이같은 법률 자문 등을 충분히 취합한 뒤 내부 논의를 거쳐 이르면 1월 중으로 유족 측에 국가유공자 등록 재검토 방침을 알릴 예정이다.
박 대령은 1948년 5월 4·3 진압 작전에 투입돼 한 달여간 작전을 지휘하다 6월 부하에게 암살됐고, 사망 2년 뒤인 1950년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유공자법에 따르면 무공훈장 수훈자가 유가족 신청을 하면 별도 심의 없이 등록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박 대령은 지난해 10월 양손자인 박철균 예비역 육군 준장의 신청에 따라 국가유공자 증서가 발급됐다.
다만 보훈부의 논리가 법 조문상은 타당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특정 인물만 겨냥한 조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보훈 행정 실무에선 법률이 정한 유족이 아닌 친족이 신청한 사례라도, 관계기관 조회와 서훈 기록 확인, 범죄경력·결격사유 검증 등을 거쳐 등록이 이뤄진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이 이재명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보훈부의 업무보고에서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 논란과 관련해 "방법을 찾아보라"라고 주문했다. 보훈부와 국방부는 박 대령의 무공훈장 수훈 사유가 4·3 사건 진압에 따른 것일 경우 이를 근거로 훈장 서훈을 취소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서훈 공적서를 찾지 못해 이 방안은 무산됐다.
훈장 취소가 되려면 수훈자는 △서훈 공적이 거짓이거나 △적대 지역으로 도피했거나 △사형,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 등 특정 범죄 경력 전과가 생겼거나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공식적으로 확인된 박 대령 관련 자료는 노무현 정부 때 발간된 '4·3 사건 진상보고서'에 실린 관계자들의 증언이 사실상 전부다. 이 보고서에는 박 대령이 강경 진압을 했다는 증언과 그가 민간인 보호에 방점을 뒀다는 증언이 나란히 실렸다. 박 대령이 4·3 사건의 가해자였다고 단정할 수준의 결정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이념 논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보훈부가 나서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4·3 사건과 박 대령의 과거 행적에 대한 실체 규명보다 행정 절차를 이용해 대통령 지시를 이행하는 데 중점을 둔 모습이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행 제도상 국가유공자 자동 등록 구조에서 논란이 된 인물이 걸러지지 않는 문제가 드러난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라며 "다만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선 기록과 근거를 정확히 따져야 논란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내부 의견도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박 대령 건과 별개로 무공훈장 수훈을 근거로 한 국가유공자 자동 등록 절차의 통제 장치 보완 등 제도 개선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절차 하자로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를 강행하는 방식이 현실화할 경우 '행정 편의로 결론을 정해놓고 끼워 맞춘다'라는 비판은 거세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박 대령과 유사한 방식으로 유공자 등록이 된 이들을 전수조사해 취소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hgo@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