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첫 휴가 나온 육군 일병 투신…시스템이 못 잡은 '위험 신호'

신교대 입소 이후 우울증 진단…입대 4개월 만에 세상 떠나
군 예방시스템, 자살 시도 등 '확실한 우려 사항' 있어야만 지원…보완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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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지난해 말 자대 배치 후 첫 휴가를 나온 육군 일병이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 생활을 시작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벌어진 일로, 그는 주변에 자해 사실을 알리는 등 수시로 '경고등'을 켰지만 죽음을 막지 못했다.

육군 22사단 일병, 신교대 입소 이후 우울증 진단…'시그널' 보냈다

7일 육군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2일 육군 22사단 소속 일병 정 모 씨(21)가 서울 잠실대교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정 일병은 휴가 첫날인 12월 8일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대 배치 후 불과 2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 일병의 '위험 신호'는 군 입대 직후부터 감지됐다. 정 일병은 입대 전엔 별도로 정신질환 진단을 받거나 치료를 받은 이력이 없으며, 신체검사에선 현역 1급 판정을 받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였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8월 대구 50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이후부터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유족과 정 일병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같은 그의 '이상 행동'은 자대 배치 직후인 지난해 10월부터 더욱 심해졌다. 전입 직후 시행한 정기 심리검사에서 정 일병은 4단계 중 3단계에 해당하는 '주의' 판정을 받았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이는 △양호 △추가 확인 △주의 △관심으로 분류된 심리검사 결과 4단계 중 3단계로, 위험한 상황에 해당한다.

그는 자해를 하기도 했다. 자해 사실과 심적 고통을 대학교 동기에게 알리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거나, 입대 전엔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하루에 한 갑 이상 태웠다고 한다. 정 일병이 사용하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 11월부터 한 달간 자살 관련 동영상을 수십 건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는 극단적 선택 직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빨간불'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자살 위험 징후를 크게 △언어의 변화 △행동의 변화 △정서의 변화로 분류하는데, 그중 언어의 변화는 갑자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거나 자살에 대한 암시 및 계획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제1병역판정검사장에서 입영대상자들이 심리검사를 받고 있다. 2024.2.1/(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 News1 이재명 기자

하지만 육군에선 이같은 정 일병의 상태를 '자살 고위험군' 수준으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 일병이 입대 후 우울증 진단을 받고 '도움 병사'로 분류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번의 면담 등 내부 관리와 외부 진료를 통해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고 군은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 일병에 대한 육군의 조치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강선영 국민의힘 의원실이 육군본부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정 일병은 신병교육대에 있을 때 민간병원의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한 달간 2차례 치료를 받았다. '도움 병사' 판정을 받고 자대에 배치된 이후에도 민간 정신과 진료가 두 달간 3회 이행됐다.

그럼에도 군 지휘부는 정 일병의 상태가 현역복무부적합심사(현부심)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병역법 및 국방부 훈령 등에 따르면 현역병은 심신 장애 등을 이유로 정상적 군 복무 수행이 곤란하다고 판단될 경우엔 법적 절차를 거쳐 병역 처분 변경이 가능한데, 이는 군 지휘부가 군의관의 의학적 소견에 근거해 현부심 개시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정 일병은 병영 생활 고충 등을 상담하는 '국방헬프콜'을 이용하지 않는 등 현행 군의 시스템상으로는 명확하게 상태를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준으로 아직 정 일병의 죽음과 관련한 의혹이 온전하게 해소되진 않은 상황이다.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은 정 일병이 군에서 따돌림을 받았을 가능성도 의심하고 있다.

정 일병의 부친인 정성현 씨(50)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아들이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군에서 따돌림을 겪었다고 토로했다고 한다"라며 "군은 아들의 자해 소식도 나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는 등 책임을 소홀히 했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육군은 부대관리훈령 등에 근거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으며, 이번 사고는 정 일병에 대한 면담 기록 등을 고려할 때 그의 사생활 문제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내부 따돌림 의혹에 대해선 "수사 중"이라며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육군 수사단과 서울경찰청은 정 일병의 정확한 사망 원인 및 사건 경위를 밝히기 위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심리 부검 등을 의뢰할 경우 중간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진 3~4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육군 자살예방 시스템의 한계…'조직 문제' 아닌 '청년 문제'로 관점 바꿔야

확실한 것은 정 일병이 주변인에 보낸 '위험 신호'를 육군의 자살예방종합시스템이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살 시도 등 명백한 '행동'이 식별돼야 분리 조치 등 행동을 취할 수 있는 현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선영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육군 생명존중 업무 규정'(자살예방종합시스템)에 따르면, 군 지휘부 및 정신과 군의관 등의 개입은 정신과 입원 대기, 자살 계획 및 자살 시도 등 확실한 '우려'가 식별될 경우에만 가능하다.

고위험군을 촘촘하게 식별하기 위해선 지휘관 재량하에 수시 검사를 진행하거나, 군 지휘관이 내부 소통을 위해 임명하는 '또래 상담병'의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군 조직의 특성상 정 일병과 같은 '그림자 위험군'을 더욱 숨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자살 예방 전문가는 "자살 위험군에 대한 식별 작업이 '너는 남들과 다르다'는 식의 '낙인찍기'로 진행되면 오히려 대상자들이 자기 검열을 강화하는 등 역효과를 낼 수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군에서 발생하는 자살 문제를 청년 세대의 문제와 분리해 '조직 문제'로 축소하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복무 중인 장병들 상당수는 이제 막 학업을 마치거나 사회 초년생인 청년들로, 이들 역시 민간인 청년들처럼 정신적으로 취약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 상황에서 상담 등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선규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분과 위원장은 "군에 입대하는 주 연령대인 20대 초반의 청년들은 청년 세대의 취업난 등의 이슈와 맞물려 정신 질환 등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라며 "군 입대라는 특수한 상황이 취약성을 강화하거나 기존 취약성을 발현하는 기제로 작용하지 않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SNS 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