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없는 중일 갈등 지속…응답 없는 '중재자' 트럼프

'대중 견제' 외치지만 일본 편 들어주지 않는 트럼프
다른 나라 분쟁·갈등엔 적극 개입…4월 방중 앞두고 '전략적 침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2025.10.31 ⓒ AFP=뉴스1 ⓒ News1 김지완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대만 문제로 불거진 중국과 일본의 갈등으로 양국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갈등이나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안에 대해선 유독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동맹인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군사적 위협마저 받고 있지만, 그간 '대중 견제'를 외쳤던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4월 중국 방문을 앞두고 중국과의 전략적 공존을 택하는 쪽으로 외교 기조를 바꾸면서 오랜 동맹인 일본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지금은 중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14일 제기된다.

항모·폭격기 동원해 압박 수위 높이는 중국…'일본군 참수' 포스터도 공개

중일 갈등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고 밝히면서 촉발됐다. 자위권 발동은 곧 일본이 대만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현직 일본 총리가 중국의 대만 침공을 일본의 자위권 발동 사안이라고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하나의 중국'을 주창해 온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대만 문제에 대한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며 즉각 반발했다. 이후 일본산 수산물 통관 중단, 일본 여행 자제 권고, 항공 노선 감편 등 경제·문화 분야 전반에 걸친 전방위적 압박 조치를 잇달아 내놨다. 마카오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중일 문화장관회의와 내년 1월 일본에서 개최를 추진했던 한중일 정상회의 불참을 통보하는 등 외교적 강수도 이어졌다.

최근 들어서는 군사적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함 선단은 지난 5∼7일 일본 오키나와섬을 포위하듯 항해한 뒤 오키나와현 동쪽 해역으로 이동했다. 9일에는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가 일본 인근 상공으로 향하는 이례적인 경로로 공동훈련을 실시했는데, 일본에 대한 '폭격'을 염두에 둔 훈련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전날인 13일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가 난징대학살 80년을 맞아 '일본군 참수'를 묘사한 포스터를 공개하며 감정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펠릭스 치세케디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서명식 후 사진을 찍고 있다. 2025.12.4 ⓒ 로이터=뉴스1 ⓒ News1 김경민 기자
분쟁마다 전면에 섰던 트럼프…이번엔 '거리두기' 선택

이처럼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적 분쟁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교적 이른 시점에 직접 개입해 중재자 역할을 부각해 온 기존 행보와 대비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 분쟁이 격화했을 때 양국 정상과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휴전을 촉구했고, 이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협상 과정에서도 미국이 중재에 관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30년 가까이 무력 충돌과 대리전 등을 이어온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분쟁 해결 때는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평화협정 서명식에 직접 참석해 "10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분쟁 중 하나를 끝냈다"라고 선언했다.

이 밖에도 지난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접경지에서 무력을 동원해 충돌했을 때도 개입해 휴전 합의를 끌어낸 뒤 이를 자신의 외교적 성과라고 자랑했다. 지난 6월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을 때도 카타르와 함께 관여해 정전 합의를 이뤄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일 갈등과 관련해서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내거나 개입 의사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미국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일본과의 강력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라는 입장을 낸 것이 전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25.10.30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지금 미국엔 중국이 더 중요"…트럼프, 내년 4월 중국 방문 예정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이 '전략적 고려'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 전략을 담은 최상위 문서인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안보 측면에선 '대중 견제' 기조를 분명히 했음에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공존을 천명하는 등, 중국과 '잘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관세 등 사안의 확전을 피한다는 '휴전'에 공감대를 이뤘다. 특히 이번 중일 갈등이 미국과 중국의 갈등 사안이기도 한 대만 문제로 인해 비롯됐다는 점에서, 미국이 이에 개입하면 중국과의 마찰은 다시 심화할 것이 자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중국과 일본의 전면적 수준으로 번지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침묵과 거리두기' 전략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NSS를 보면 미국은 중국을 대결이 아닌 관리 대상으로 인식하는 기조가 분명해졌음을 알 수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인 일본 편을 드는 것은 기조에 맞지 않고, 그렇다고 동맹을 배신하고 중국 편을 노골적으로 들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공존이 가능한 전략적 공간 마련을 모색하고 있고, 미중 관세 협상이 휴전에 들어간 상황에서 굳이 중일 갈등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내년 4월 중국 방문을 앞둔 상황에서 관망이 지금의 트럼프에겐 유리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