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안보정책 문서서 '한반도 비핵화' 증발…韓은 '핵 없는 한반도'
미중 北 우선순위 하락, 韓 미온적 태도…'나 홀로 외침' 우려도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미국과 중국이 최근 공개한 핵심 안보 전략 문서에서 공통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제외하면서 북핵 문제의 우선순위가 낮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5일(현지시간)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북한'과 '비핵화' 관련 문구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트럼프 1기 NSS에선 북한을 17차례 언급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했고, 바이든 행정부의 2022년 NSS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제시했던 점을 감안하면 뚜렷한 기조 변화로 평가된다. 대신 이번 NSS에서는 대만 방어와 '제1도련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믈라카 해협) 억제력 강화, 동맹국의 전략적 기여 확대를 핵심 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미국은 한국과의 양자 회담 등 대면 외교에서는 "완전한 비핵화 목표는 여전하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전략 문서에서의 누락은 대북 문제의 관심도가 떨어졌음을 상징한다는 해석이다. 미국 외교 안보 역량을 중국 견제 및 관리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도 지난달 27일 발표한 '신시대 중국의 군비통제·군축·비확산' 백서에서 한반도 비핵화 추진 등의 표현 대신 "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정한 입장을 견지하고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 왔다", "정치적 해결을 촉진해야 한다"라는 원론적 기술만 담았다.
이번 백서는 2005년 9월 발표한 백서를 개정한 것으로, 당시엔 "한반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등에서 비핵지대를 설립한다는 주장을 지지한다"라고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일련의 흐름을 두고 외교가 안팎에서는 미중 양국 모두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사실상 '한반도 비핵화'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걸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신 북한을 '관리 대상'으로 인식하며, 미중 패권경쟁 사안에 더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중국의 태도를 두고선 지난 9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과 이를 기점으로 북중관계 회복 기류도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당시엔 북중러 정상이 천안문 망루에 함께 올라 '핵보유국 인정'을 연출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김 총비서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중 정상회담 관련 중국의 설명 자료에서도 한반도 비핵화가 언급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비핵화 언급을 축소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최근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고려해 '핵 없는 한반도'라는 새로운 기조를 전면에 내세우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민주평통 출범회의에서 "전쟁 걱정 없는 한반도를 위해 핵 없는 한반도를 추구하겠다"고 밝히며 비핵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북한이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비핵화 의제 배제'를 요구하는 상황을 고려한 접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외교가에서는 앞으로 한국의 태도가 중요해졌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미중 모두 북한 비핵화의 현실성을 고려한 전략적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마저 '미온적' 태도를 취할 경우, 한국의 비핵화 정책은 '나 홀로 외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이 비핵화를 포기했다기보다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인데, 미국 우선주의가 강하게 반영돼 있는 NSS 관점에서 북핵은 미국 본토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의 군비백서는) 북한이 비핵화 표현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중국이 이를 의도적으로 쓰지 않는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중국 양국이 북핵 문제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까지 발을 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라며 "북핵이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도 한반도 평화도 진전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이재명 정부의 'E.N.D 이니셔티브'(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와 관련해선 "비핵화 요소가 분명히 들어 있는 만큼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다만 E.N.D 가운데 특정 항목에 우선순위를 두는 방식이 아니라 세 요소가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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