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과 대화 위해 영토 조항 바꾸자는 자주파…동맹파와 '세력 다툼' 지속
원로 좌담회서 "NSC 좌장, 통일부 장관이 맡아야"…위성락 체제 '흔들기'
'긍정 경쟁' 통한 융화 아닌 '불편한 동거' 지속 부각돼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정부 내에서 양자 중심의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자주파'와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외교를 중심으로 대북 사안을 풀어나간다는 관점을 지닌 '동맹파'의 불협화음이 4일 지속되는 모양새다.
자주파의 '거두'로 불리기도 하는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전날인 3일에 열린 '남북관계 원로 특별좌담회'에서 헌법 3조(영토 조항)와 4조(자유민주주의적 통일 정책 수립) 조항을 바꾸는 논의가 개시돼야 남북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북한을 대화로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은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보다 헌법 3조와 4조의 개헌 문제라며 "헌법 3조와 관련된 '두 국가론'에 대한 우리의 입장 정리가 전략적 포석을 만들고 방향을 결정해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주장은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을 국가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지난 2023년 12월부터 주장한 '남북 두 국가론'과 연관이 있다. 북한이 두 국가론을 수정할 동향을 보이지 않자, '현실적 두 국가론'을 꺼내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겠다는 통일부의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주장인 셈이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주장을 들어 주는 듯한 모습을 취해 일단 대화의 물꼬를 튼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많은 비판이 제기된다. 헌법을 바꾸는 것에는 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데, 남북관계라는 특정 사안을 위해 국가의 정체성인 헌법을 건드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남북이 서로 다른 두 국가가 아닌 '특수관계'임을 전제로 설정된 법과 정책, 사회 시스템에도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특정 정권의 정책 추진을 위한 개헌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이 논쟁에 있어 자주파와 동맹파 간의 선명한 입장 차이가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좌담회에 참석하기도 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현실적 두 국가론'을 주창한 바 있다. 남북이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오랜 시간 두 국가로 활동해 왔기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이는 독일의 사례와 같이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 정 장관의 논리다.
그러나 정부 내 동맹파의 리더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9월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남북은 통일이 될 때까지 특수관계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며 정 장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부 내에서 자주파와 동맹파의 '불협화음'이 크다는 관측이 본격화한 시점이기도 하다.
정 장관은 지난 10월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모두 '자주적 동맹파'"라며 불협화음을 진화했으나, 이후에도 두 진영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일은 반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집권 직후 빠르고 강력한 대북 유화책을 전개했다. 윤석열 정부 때 심화한 갈등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대화 재개에 도움이 된다는 자주파의 논리가 이 대통령을 설득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북 확성기 및 대북 심리전 방송의 중단과 대북전단 살포 통제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하지만 북한의 호응은 없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7월 28일 담화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우리와의 대결 기도는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라며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부 내 기류에 변화가 생겼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말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로 구성된 'E·N·D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가 중요하다는 동맹파의 의견이 상당 부분 개진된 결과물로 알려졌다. 비핵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북한의 반발과 별개로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와 박자를 맞춘 대북 기조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이 반영된 구상인 셈이다.
정부는 이후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자 북한은 "한미가 우리 국가의 실체와 실존을 부정하며 대결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반발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22기 자문위원회 출범식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의 새 방향성을 공개하며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를 두고 정부의 올해 주요 외교 이벤트가 끝났고, 연말연초에 새로운 대외 정책을 정하게 될 북한을 더 이상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자주파의 논리가 받아들여진 흔적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부는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자주파 내에서는 대통령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외교관 일색으로 꾸려진 것에 대한 불만이 지속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불씨는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NSC는 현재 외교관 출신의 위성락 실장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군 출신의 김현종 1차장(안보·국방), 외교관 출신의 임웅순 2차장(외교·통일), 역시 외교관 출신의 오현주 3차장(경제·사이버 안보)으로 구성돼 있다. NSC 회의는 실장 주재로 국가정보원장, 외교·통일·국방장관과 세 명의 차장이 의견을 개진해 접점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자주파 내에서는 이같은 방식이 '격'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세현 전 장관은 전날 좌담회에서 "장관급 안보실장 밑에 차관급 실장이 셋이 있다"라며 "차관급이 국정원장, 통일·외교·국방장관과 같은 급으로 참석해서 발언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지적했다.
문정인 교수는 아예 위 실장을 직접 지목해 "본인께서 이걸 잘한다고 생각해서 그 자리를 하시는 건데 제가 볼 때는 조정이 좀 필요하다"라고 비판했다. 문 교수는 특히 "NSC 좌장은 안보실장이 아니라 통일부 장관이 맡아야 한다"라고도 주장했다. 정동영 장관이 첫 통일부 장관 재직 때인 지난 2006년 NSC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전례'가 이치에 맞는다는 취지다.
문 교수와 정 전 장관은 'E·N·D 이니셔티브'에 대해서도 "1990년대 초 노스코리아 엔디즘(북한 종말론·North Korea Endiesm)을 연상하게 한다"라며 비판적 입장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이날 좌담회를 두고 "자주파가 정부 밖의 인사들의 입을 빌려 동맹파를 공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동맹파와 자주파는 실체가 없으며 외교안보팀은 상호 보완적 경쟁 관계에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외교·통일·안보 부처 내에서도 두 진영이 '경쟁이 아닌 갈등관계'라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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