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국 견제용", 韓은 "대북 억지력"…핵잠 역할 놓고 '온도차'
美, 한반도를 '남태평양 조망 전략 허브'로 규정
- 허고운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어렵게 얻어낸 '핵추진 잠수함(핵잠) 건조 허가'가 오히려 한미 간 전략 인식 차이를 가시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은 핵잠을 '북한 억지력 강화의 핵심 전력'으로 규정하지만, 미국은 이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에 자연스럽게 편입하는 분위기다.
17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동쪽이 위'(east-up) 방식의 지도 관련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일본·필리핀을 잇는 '삼각 협력'을 언급하며 세 나라를 "하나의 연결된 네트워크"라고 표현했다. 한반도를 '북한과의 접경'이 아닌 중국, 러시아 등 남태평양을 함께 조망하는 전략 허브로 규정한 셈이다.
지난 14일 한미가 발표한 관세·안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도 미국이 지향하는 전략적 방향성이 드러난다.
팩트시트에는 '중국'이라는 직접 표현은 없지만,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 유지',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항행의 자유 수호',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 위협' 등의 문구가 담겼다. 사실상 한미동맹을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전체로 확장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상징적 사례는 한국 핵잠이다. 팩트시트는 '미국은 한국의 핵잠 건조를 승인한다'라고 명시했고 연료 조달 등 핵심 기술 협력을 약속했다. 한국으로선 역대 정부가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절됐던 숙원을 처음으로 문서화한 성과다.
그러나 미국의 시각은 우리 정부의 기대와 다소 어긋난다. 대릴 커들 미 해군참모총장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핵잠이 중국을 억제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는 게 자연스러운 예측"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사시 대만에서 주한미군이나 한국군이 역할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분명히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브런슨 사령관 역시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를 중심으로 평양뿐 아니라 베이징·타이베이·마닐라까지 표시한 지도를 내세우며, 이 지역 전력을 "가장 실질적인 억제력"이라고 평가했다. 브런슨 사령관은 "새로운 동맹을 만들거나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주한미군을 포함한 동맹 전력을 대중 억제의 전진 거점으로 보는 시각이 전면에 드러났다는 해석을 낳는다.
우리 정부는 핵잠과 대만 관련 문구를 중국 견제와 거리 두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대만해협에서의) 유사시 역할까지 논의된 바는 없다"라고 했고, 핵잠 역시 "기본 목적은 북한 억지력 차원"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강조하는 '대북 억지용 핵잠' 프레임이 어느 수준까지 유지될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핵잠과 한·미·일·필리핀 협력 구도를 인도·태평양 억제 전략의 일부로 규정하면서, 한국이 구상하는 자주국방 로드맵과의 접점이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변수도 남아 있다.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핵잠 협력은 상업적 협력 차원을 넘어 국제 비확산 체제와 역내 평화 안정과 직결된다"라며 "한국 측이 신중하게 처리해 주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핵잠 건조 과정에서 중국이 한국에 경제·외교적 압박을 강하게 넣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가 임기 내를 목표로 추진하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은 미국의 안보 전략상 달성이 용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한미군의 대북 억지 임무를 줄이고 중국을 겨냥한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선 한국군에 한반도 방어 주도권을 조기에 넘겨주는 게 미국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이 진행돼도 연합방위의 기본 토대는 변하지 않는다"라며 "동맹은 하나인 상태로 역내 안정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침략을 억제하고 격퇴할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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