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냉각된 중·일관계에…한·중·일 정상회의 연내 개최 어렵다

연내 개최 추진했으나…3국 간 논의 진척 없어
올해 일본이 개최 순서…日 외교가는 '조용'

한중일 3국.ⓒ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의 임명 직후 냉각된 중·일관계로 인해 연내 개최가 추진되던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가 사실상 어려워진 모양새다.

5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3국 간 한·중·일 3국 간 정상회의 개최 논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지난달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3국 간 관련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일본 쪽에서 미온적이라는 게 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총리 관저와 일본 외무성 모두 현재로선 연내 개최를 상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2008년 12월 일본에서 처음 열렸다. 한국에선 대통령, 중국에선 국무원 총리, 일본에선 내각 총리가 각각 참석한다. 주로 경제·문화 분야에 방점이 찍힌 3국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체다. 3국은 '일본→중국→한국' 순으로 의장국을 맡아 매년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지만 2012년 이후엔 국제 정세 변화와 한중·한일·중일 관계의 굴곡에 따라 회의가 네 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마지막 회의는 지난해 5월 한국에서 열렸는데, 이때 회의도 복잡한 서로의 이해관계와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5년 만에 열린 회의였다.

올해 한·중·일 정상회의 주최국은 일본이다. 그런데 정작 일본이 회의 개최에 미온적이기 때문에 연내 회의가 성사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당장 중국과 '협력'을 하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분석된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5.10.31. ⓒ AFP=뉴스1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만나 처음으로 대면 회담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일본의 새로운 내각이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세우고 양국의 원로 정치인과 각계 인사들이 중·일관계 발전을 위해 기울인 정성과 노력을 소중히 하길 바란다"라며 다카이치 총리를 나무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시 주석은 다카이치 총리가 과거 일본의 무라야마 전 총리가 식민 지배와 주변국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이어받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가 정치인 시절에 노골적인 반중(反中) 성향을 드러내고, 일본이 대만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시 주석은 다카이치 총리의 취임을 축하하는 축전을 보내지 않았고, 정상회담 때도 취임을 축하하는 의례적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다카이치 총리도 지지 않았다. 그는 회담이 끝난 뒤 시 주석에게 중국과 일본, 대만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이) 문제를 꺼냈다며 "중국의 동중국해·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행동, 홍콩이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의 (인권 탄압) 상황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라고 밝혔다.

여기에 다카이치 총리는 시 주석을 만난 다음 날인 지난 1일 APEC에 대만 대표로 참석한 린신이 총통부 선임고문과 별도로 면담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자리에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대만을 '중요한 파트너'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는 린 고문과 악수하는 사진을 SNS 계정에 게재하기도 했다.

그러자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을 사실상 '국가'로 대우했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라고 반발했고 중국 여론에의 반일 감정도 증폭했다.

주목할 부분은 최근 일본 TBS와 JNN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카이치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전임인 이시바 시게루 내각보다 38% 가까이 높은 82%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극진한 대우'(오모테나시)로 호평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 다카이치 총리의 집권 초 외교가 지지율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각을 세운 다카이치 총리가 한동안 자신의 외교 기조를 바꿀 이유가 없는 여건을 마련한 셈으로, 다카이치 총리의 입장에선 무리해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이달 말(22~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라는 다자외교 무대가 또 열린다는 점도, 연내 한중일 정상회의 추진에 동력을 떨어트리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