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의 변모 [정창현의 북한읽기]

북한은 지난 10월 10일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을 성대히 거행했다. 이틀 후 경축행사에 참가한 해외동포들을 위한 연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리선권이 축하 연설을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리선권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 동지"라고 호명했다. 이 연회에는 노동당 창건 80돌 경축 재일본조선인축하단, 재중조선인총연합회축하단, 국제고려인사회연합회축하단, 재중동포대표단, 재일조선사회과학자대표단 등이 초청됐다.

이 보도를 통해 현재 리선권이 당 부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해외동포사업을 총괄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여기서 주목되는 대목이 리선권의 복권과 담당 분야다. 북한은 2024년 1월 초 대남부문 기구 폐지 및 정리 방침에 따라 대남담당 전문부서인 '당 통일전선부'를 '당 중앙위 10국'(대내 명칭 '대적지도국')으로 격하하고 통일전선부장이었던 리선권도 국장으로 강등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부도 2024년 말 발간한 주요인물정보에서 리선권이 '당 10국'의 책임자인 국장직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통일부는 "북한의 대남기구인 통일전선부가 노동당 중앙위 10국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당내 위상에는 아직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4년 1월 1일 최선희 외무상과 함께 전년도 연말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대남대적부문 기구 폐지 및 정리와 근본적인 방향 전환에 대한 협의회'에 참가한 이후 리선권의 공개 활동은 5월 김기남 당 비서 국가장의위원 활동, 8~9월 재일 조선대학교 졸업반 학생들의 조국방문단 환송연 참석만이 확인되었고, 당시 그의 직책은 명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리선권이 다시 당 부장으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1월 10일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을 위한 연회가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리선권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소개했고, 이후 지속해서 '당 부장'으로 불렸다. 2024년의 통일부 분석이 맞는다면 국장으로 격하됐던 리선권의 직위가 다시 부장으로 회복된 것이다.

이와 관련 총련 결성 70주년을 맞아 리선권이 조선노동당 이론기관지 <근로자>에 게재한 글이 주목된다. 그의 직책은 '당 중앙위원회 부장'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총련 중시, 해외동포 중시는 우리 공화국의 영원한 국책이며 총비서 동지께서 혁명영도의 첫 시기부터 일관하게 견지하여 오신 불변의 신조"라며 "지구상에는 나라도 많고 조국을 떠나 남의 나라 땅에서 사는 교포들도 많지만, 우리 공화국처럼 재일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백방으로 옹호 보장하는 나라는 없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그는 "동포사회의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한 사업"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민족'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후 '민족', '통일' 등의 단어를 모두 삭제한 것과 달리 해외동포들을 대상으로는 여전히 같은 민족이라는 점을 부각한 셈이다.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이후 최근까지 당내 이론지 <근로자>에 실린 글을 분석해 보면 이 같은 기조가 분명하게 확인된다. 2022년 7월호에 7·4 남북공동성명 50돌을 맞아 한희철 당시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김일성 주석의 조국 통일 활동 업적을 찬양하는 글을 게재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통일 관련 글은 <근로자>에 단 한 편도 게재되지 않았고, '해외동포 문제'를 다룬 몇 편의 글만이 실렸을 뿐이다. 2024년부터는 아예 '조국 통일문제'로 분류되던 범주가 사라졌다. 북한의 정책 기조가 대남정책보다 해외동포 사업으로 확연하게 변모한 것을 알 수 있다.

리선권의 직위가 '국장'에서 '부장'으로 회복됐지만 그가 대남업무를 담당하는 '당 10국'과 별도로 해외동포 문제를 담당하는 신설 부서의 책임자인지는 분명치 않다. 현재로서는 대남 정책과 선전, 해외동포 사업을 총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8월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최근 평양에 다녀온 제3국인에게 '통일전선부 간판은 없어졌는데, 그 건물 사무실과 사람은 그대로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언급했다.

다만 통일전선부가 '당 10국'으로 격하된 뒤에 인력 변동이 없다고 하더라도 산하 조직들의 부침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통일전선부의 외곽단체였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화해협의회, 조국전선 등이 해체됐기 때문에 이를 담당하던 통일전선부 산하 회담과, 교류와 등도 어떤 식으로든 개편됐을 것이다.

반면 북한은 2022년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을 제정하는 등 해외동포와의 사업 비중을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서 해외동포 부서는 확대됐을 것이다. 올해 리선권 부장이 일본 총련이나 중국과 러시아의 동포조직 관련 행사에 집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해외동포 전체를 대상으로 한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을 제정함으로써, '조선' 국적과 관계없이 해외동포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해외동포의 투자를 보장하며 특혜와 우대를 명시하였다. 한국의 '재외동포기본법'에 대응하는 조치이기도 이다.

일부 기능과 인력은 외무성과 정찰정보총국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과거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해외 영사관에 파견된 인력이나 대남 선전 담당자 일부는 외무성으로 소속이 바뀌었고, 대남 정보 수집과 분석 담당 인력의 일부는 대외 정보 획득과 분석 기능을 강화하면서 정찰총국을 확대 개편한 정찰정보총국으로 옮겨간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통일전선부 산하 조국통일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대적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사이에 다양한 분야의 대화와 교류가 이뤄지면서 대남업무를 총괄하던 통일전선부는 남북관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한국의 정권교체 때마다 통일전선부의 핵심 간부들이 숙청되는 '악순환'을 겪기도 했지만 2018년부터 시작된 북미대화 때는 외무성을 대신해 미국과의 대화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2023년 12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이 나오면서 통일전선부의 위상은 추락했다.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우며 남북 교류를 중심에 놓았던 북한이 '통일·동족' 지우기에 집중하면서 통일전선부의 중심 업무 자체가 남북관계가 아닌 해외동포 사업으로 변모된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대북지원부'라고 비판하며 대폭 축소했던 통일부의 회담·교류 협력 조직 및 기능을 다시 복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통일부의 대화 파트너인 옛 통일전선부의 위상과 기능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남북대화의 재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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