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대화 열려도 '트럼프 딜레마' 상존…불안한 협상 불가피

[新 북핵 위기]② 한미 협의 없이 북한에 손짓할 가능성 큰 트럼프
대화 진행 도중엔 '돌발 합의' 우려…"치적 신경 쓰다 안보 놓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노민호 정윤영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비핵화를 버리면 대화가 가능하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대화'를 언급하고 나섰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위한 기 싸움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가에선 북미 대화가 시작되면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새로운 국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즉흥적이고 치적 중심의 협상법이 또 다른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트럼프의 APEC 행보에 주목…北美 접촉 이뤄지면 '또 한 번의 성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9일 한국 방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7~29일 일본을 방문한 뒤 바로 한국을 찾는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가 오는 3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본행사에는 불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9일 한국을 찾는 것이 '당일치기'라는 관측과, 그가 나름의 '대북 구상'을 행동에 옮기기 위해 한국을 일찍 찾는 것이라는 예상이 동시에 제기된다. 지난 2019년 6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방일 직후 한국으로 향하며 김정은 총비서에게 '만나자'라는 '트윗'을 날려 긴급 회동이 성사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상황은 아직 유동적이라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지금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된 2018년, 2019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성향을 고려하면 돌발 상황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북한 역시 김 총비서 스스로 "트럼프와 좋은 추억이 있다"라고 언급하는 등 북미 정상의 '친분'과 외교를 구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사전 탐색'의 기회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APEC 계기 북미 정상의 접촉이 성사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긴급 회동'한 뒤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비핵화 철회' 김정은 요구에 트럼프의 답변은?

하지만 북핵 문제에 대한 협상이 개시되기까진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를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하면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는 김정은 총비서의 '제안'에 답을 해야 한다.

비핵화를 버린다는 것은 한미, 한미일은 물론 사실상 전 세계적인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당장 한국과 일본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덜컥 김정은 총비서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4년이라는 짧은 임기의 사실상 25%를 소화한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내기에 급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고 '대화 테이블'을 차리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선 북한이 핵무기 일부를 폐기하고 핵 시설을 일부는 닫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핵물질과 핵무기를 계속 생산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한국의 입장에선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을 받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을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앞세우고, 한국이 '페이스메이커'(pacemaker)가 되겠다며 미국이 대북 대화 추진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청취할 것을 추동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첫 대화 시점이 늦어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조급함도 커질 수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선언한 김정은의 주장을 가볍게 넘기면 안 되는 이유다.

ⓒ News1 DB
대화 시작되도…디테일 부족한 트럼프의 '돌발 합의' 대비해야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해석되는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부르는 돌발적인 행보를 보였다. 한미 양국은 북핵 공조는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관세 협상의 후속 협의가 진통을 겪고, '한미동맹 현대화' 등 큰 사안을 다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며 대북 공조가 느슨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예측이 어려운 트럼프의 성향 때문에 북미 간 대화가 진행되고 '비핵화'와는 거리가 있는, 제대로 되지 않은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까지 가지 않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및 핵추진잠수함 프로그램 중단 등에서 만족한다면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올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에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선언하면서 한국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미국 국방장관과도 의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라며 "북한의 비핵화는 전혀 진전이 없는데 한미의 연합 억제력과 한미동맹만 흔들리는 나쁜 시나리오가 되지 않도록 북미 대화를 하기 전에 한미 간 공조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