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D-30]① 미·중 정상 '담판'·北에 손짓…李 대통령 실용외교 시험대
미·중 갈등 전환점 만들면 성과…北의 '적극 호응'은 가능성 작아
한·미 관세 교착 풀고, 한중관계 전환점 만들어야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10월 3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이재명 정부 실용외교의 또 한 번의 시험대로, 냉정한 평가서를 받는 계기가 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자리에 모이는 다자외교의 장으로,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가장 큰 외교 이벤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시진핑 주석과 한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기로 합의했다"라고 밝혔다. APEC에 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가 중국과의 '담판'에 있음을 보여 주는 행보다.
중국은 아직 시 주석의 APEC 참석을 공식화하진 않고 있다. 정부는 다각적 소통을 통해 시 주석의 APEC 참석 의사를 기정사실화하고,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미·중 정상의 동시 방한은 APEC 정상회의 의장국인 우리에겐 기회 요인과 압박 요인이 동시에 제기되는 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 의장국으로서 양국 정상 간 담판의 장을 한국이 마련하는 모양새는 실용외교에 도움이 된다. 만일 미·중이 이른바 '경주 합의'와 같은 결과물을 도출할 경우, 경주 APEC 정상회의의 최대 성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한국이 양국 사이 등거리 외교를 펼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은 벌써부터 외교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서울과 경주에서 양국 정상이 만날 장소와 형식을 꼼꼼하게 따지며 치열한 수싸움을 진행 중이다. 두 정상이 어디서 만나 어떤 논의를 할지에 대해 정확하게 확인된 사실은 없지만, 물밑에서 다양한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별개로 한국은 미국과는 복잡한 관세 및 안보, 비자 협상을 풀어낼 수 있고, 중국과는 관계 개선의 분기점을 삼을 수 있다는 점이 외교적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참가는 재집권 후 첫 한국 방문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첫 정상회담 이후 두 달여 만에 만나게 된다.
한미는 관세 협상의 구체적 실행 방안을 논의하는 후속 협상을 시원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APEC 전 타결을 목표로 양국 실무진이 숨 가쁘게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결과는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만일 관세 관련 잡음을 봉합하지 못하면, APEC 때 한미 정상이 어색한 만남을 가져야 할 수도 있다.
최근의 기류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실무진이 어느 정도 접점을 찾았다면, 한 달의 기간에 차분하게 디테일을 다져 한미 정상이 담판을 짓는 모습을 APEC 때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최우선 안건으로 한미 정상의 두 번째 회담이 준비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 논의 외에도 한미 간에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역할 변화), 국방비 증액 등 '한미동맹 현대화' 사업과 북한 문제라는 큰 사안이 남아 있다. APEC 계기 한미 정상회담이 반드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특히 북한 문제는 정부가 '선(先) 북미 대화'를 추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APEC 때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을 가장 기대하는 외교 현안 중 하나다. 지난 2019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총비서와의 '판문점 긴급 회동'을 성사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북한을 움직일 강력한 트럼프의 메시지를 끌어내기 위한 사전 작업이 진행 중일 것으로 보인다.
11년 만에 방한하는 시진핑 주석과 풀어야 할 현안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중 양국 간 협력의 공간을 모색한다는 기본 입장을 확립한 바 있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면서도, 더 적극적인 대중 외교를 전개한다는 것이 실용외교의 구상이다.
문제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의구심'이 완연히 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때 극심했던 '반중 정서'로 인해 멀어졌던 중국은,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서울에서 반중 시위가 이어지는 점에 대해 꾸준히 우려를 나타내는 등 한국 정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메시지를 주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시 주석은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새로운 한중관계'의 명확한 구상,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견제 동참' 요구에 대한 한국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을 상대하는 중국의 가장 큰 무기는 경제와 북한이다. 지난달 초 중국의 전승절 80주년 행사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전격 참석하며 북·중이 다시 '혈맹' 관계 복원에 들어간 만큼, 시 주석도 대북 대화를 카드로 한국을 당기려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한반도 영향력 확대가 중국의 전략적 기조라는 점에서 중국은 한·중 간 해묵은 과제인 '한한령'(限韓令) 해제와 최근 시작된 중국인 관광객 무비자 단체 관광 등과 같은 인적·문화 교류 활성화 방안도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국가도 미·중 관계에 영향을 미치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그럼에도 중국의 권위주의, 트럼프의 일방주의 사이에서 양측을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노력을 계속 경주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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