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엔총회서 '북한' 언급 안 했다…'북미 접촉 성사' 방증?
1기 때 4차례 유엔총회 연설 중 3차례 北 거론
대북 접촉 진행 중이거나…의도적 '모른척' 가능성도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단 한 차례도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좋은 추억'을 언급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그 이유를 두고 상반된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자신이 집권 후 7개월 만에 7개의 전쟁을 끝냈다면서 외교적 성과를 자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캄보디아-태국', '코소보-세르비아', '콩고-르완다', '파키스탄-인도', '이스라엘-이란', '이집트-에티오피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 자신이 '끝낸' 전쟁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자신의 노력에 유엔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볼멘소리를 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의 교착과 관련해 러시아와 유럽 국가들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인도와 중국도 비판하는 등 자신이 주요 관심사로 관여하는 거의 모든 국제 사안에 대해 한마디씩 언급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1시간가량 진행된 긴 연설에서 끝내 북한이나 한반도 사안에 대한 생각이나 방침을 언급하진 않았다. '북한'은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고, 한미관계나 한반도 사안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한국은 관세·무역 협상 타결 국가를 나열하면서 한 차례 언급됐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집권 때인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총 네 차례 유엔총회에서 연설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화상으로 진행된 2020년을 제외하고 모두 북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선명하게 밝힌 바 있다.
첫 유엔총회 연설인 지난 2017년 9월 연설에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를 '로켓맨'이라 지칭하며 "로켓맨이 스스로와 자신의 정권을 죽이려는 자살 시도를 하고 있다"라고 북한 정권을 강하게 비난했다. 또한 "완전한 파괴"를 언급하며 대북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이듬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며 전격적으로 열린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후인 2018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선 "(회담은) 매우 생산적이었다"라며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실험 중단을 주요 성과로 꼽기도 했다. 동시에 김 총비서를 향해 "감사를 표한다"라고도 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같은 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선 북한의 '잠재력'을 언급하며 "이를 실현하려면 비핵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해 북한과의 대화에 '미련'을 보였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에서 북한을 향해 '대화 제스처'를 할 것으로 예상됐다. 두 번째 집권 전부터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의 친분을 수 차례 강조하며 북미 대화에 강한 의욕을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 총비서가 지난 20~21일 진행된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14기 13차 회의 연설에서 전향적 메시지를 내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로 '화답'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 총비서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거나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후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 관련 발언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외교가에서는 상반된 분석이 동시에 제기된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진행형'이 아닌 북한보다는 자신의 성과를 부각하거나 시급한 정리가 필요한 사안들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으론 북한이 최근 중국, 러시아와 '반미 연대' 공조를 강화하고, 북한의 강한 반발로 당장 북한의 비핵화 추진이 쉽지 않아진 어려운 상황에서 우선은 한국, 일본 등과 박자를 맞추는 게 득이 된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일각에선 조심스럽게 북미 접촉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북한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미국 측에 전달했거나, 미국이 모종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하면서 실무 차원의 소통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신중한 모습을 보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번 유엔총회 무대에 차관급인 김선경 외무성 부상을 평양에서 파견했다. 평양에서 파견된 북한 외무성의 고위 당국자가 유엔총회에 참석한 것은 7년 만으로, 김 총비서가 최근 중국의 전승절 무대에 직접 참석하며 다자외교 활동의 폭을 넓히려는 분위기와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정부도 북미 간 물밑 접촉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 북미 접촉 여부는 오는 29일(현지시간) 북한의 유엔총회 연설을 보면 추가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북한 측 연설자가 미국에 대한 비난 발언을 자제하거나 톤을 조절한다면 접촉이 진행 중임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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