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과 한미 동맹 시험대…국민 보호는 어디에 [전문가 칼럼]

한창평 상지대 스마트자동차공학과 교수

한창평 상지대 스마트자동차공학과 교수 = 최근 미국에서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공동으로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들이 집단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히 300여명이 체포된 지 8일 만에 석방돼 전세기를 통해 한국 땅을 밟았지만, 사태의 충격과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한미 경제 협력과 동맹 신뢰 그리고 정부의 외교적 책무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무후무 한국인 구금…한미 경제 협력 상징과 균열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대규모 배터리 합작 공장은 한미 경제 동맹의 대표적 사례였다. 미국은 전기차 산업 육성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한국 기업을 파트너로 맞이했고, 한국 기업은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과감히 투자에 나섰다. 양국 모두가 '경제안보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윈윈 구도를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집단 구금 사건은 이런 협력 구조에 균열을 드러냈다. 동맹국의 전략 산업 근로자들이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채 대거 구금된 것은 '전무후무한 사태'로 평가된다. 이는 단순한 노동법 적용을 넘어 양국 신뢰의 기초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이번 석방과 귀국은 피해자들과 가족에게는 안도의 순간이다. 전세기를 투입해 귀국을 지원한 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보호 조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건이 여기서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미 동맹 아래 긴밀한 경제 협력 상황에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미국 당국의 과도한 법 집행에 대해 한국 정부가 어떤 대응을 했는지, 앞으로 유사 사례를 막을 제도적 장치는 무엇인지 여전히 물음표가 남아 있다.

더욱이 이번 석방은 어디까지나 사후적 조치일 뿐, 초기 단계에서 정부가 보여준 미온적 태도는 국민적 불신을 키웠다. 단순 귀국으로 사태가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본질과 원인을 규명하고 외교적으로 재발 방지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ICE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금지) 2025.9.6/뉴스1
관세 협상 속 한미 동맹 그림자…적극적 대응 필요

헌법은 해외에 있는 국민을 보호할 책무를 국가의 책무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미래 먹거리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배터리 관련 국가 전략산업에 투입된 인력들이 집단 구금된 사안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관세 협상 과정에서 향후 4년간 미국에 총 260억 달러(약 36조 원)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모습이다.

국민은 국가가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는 기본적 신뢰를 바탕으로 해외에 나간다. 그 신뢰가 흔들릴 경우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정부'라 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바로 그 신뢰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미 동맹은 군사 안보를 넘어 경제와 기술, 문화까지 아우르는 전방위적 관계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법 집행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한미 경제 협력에 미칠 파장이 크다. 미국의 일방적 조치가 반복된다면 한국 기업은 투자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일자리 축소와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동맹의 본질은 '상호 존중'이다. 동맹국의 근로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국 정부가 강력히 대응하지 않는다면 동맹은 균열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한미 관계가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닌 '가치 기반 동맹'으로 진정 유지되고 있는지를 시험한 계기였다.

한미 관계 신뢰 회복 통해 국민 보호 최우선해야

이제 정부가 할 일은 명확하다. 이번 구금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여부를 파악해 한미 간에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한미 간 경제 협력에 참여하는 근로자들의 법적 지위를 명문화하는 별도 협정을 추진해야 한다. 단순히 "귀국했으니 다행"이라는 태도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외교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이번에 전세기를 타고 돌아온 이들은 단순히 귀국한 근로자가 아니다. 그들은 국가가 해외에서 국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다시 일깨운 증인이자 정부의 존재 이유를 묻는 피해자다. 동맹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적극적인 관리와 단호한 외교가 있어야만 지속된다. 미국의 과도한 조치도 문제지만, 이를 방치하고 뒤늦게 수습에 나선 정부의 태도는 더 큰 문제다.

정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 보호와 동맹 관리의 기본을 되찾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한미 관계는 불신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지키는 데 있다. 이번 사건은 그 사실을 냉정하게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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