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안보 협상' 순항 중"…관세 협상과 무엇이 다른가
한미 모두 '수용 가능한 카드'로 불협화음 없는 듯…SMA·전작권은 조정 여지
APEC 계기 한미 정상회담 때 '타결' 가능성도 제기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한미가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3500억 달러(약 487조 원)의 대미 투자 방식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과 달리 안보 협상은 순항 중인 것으로 23일 파악된다. 민감한 사안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안건이 일부 빠지면서, 큰 틀에서 한미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논의가 오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안보 협상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라며 "한미 간 더 이야기할 게 남아 있는 것 같지 않다"라고 전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최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방비 증액과 원자력 협정 개정 관련 한미의 논의가 순탄하다며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까지 협상의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미 안보 협상에는 외교부와 미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미 양국의 국가안보실·국방부가 두루 관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 협상의 핵심 사안은 △한국의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위한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재협상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인도·태평양 지역으로의 역할 확대) △전시작전권 전환 로드맵 합의 △원자력 협정 개정 등으로 예상됐다.
이 가운데 국방비 증액 부분의 협상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3.5~3.8% 수준으로 국방비를 인상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정부는 작년 말에 수립한 국방중기계획에 따라 2029년까지 매년 7~8%의 예산을 증액하면 산술적으로 2035년까지 GDP 대비 3.5%, 약 128조 원의 국방 예산을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GDP의 2.32%(약 61조 원) 수준이다.
이는 나토가 오는 2035년까지 GDP 대비 5%를 국방 예산으로 배정하겠다는 구상으로 미국과 합의점을 찾은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나토 회원국들은 5% 중 3.5%는 나토의 국방비 항목에, 나머지 1.5%는 도로·항만·사이버 방위 등 안전 보장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에 사용하기로 한 바 있다.
아울러 정부는 미국산 무기 구매도 국방비 증액 항목에 포함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측은 이를 '만족스러운 제안'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정부가 2030년까지 250억 달러(약 34조 원)어치의 미국산 무기 구매를 미국에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방위비분담금 증액과 전작권 전환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서 큰 쟁점이 아니거나, 협상이 미뤄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측이 국방비 증액을 수용하며 방위비분담금을 문제 삼지 않았거나 △미군에 고용된 한국인 군무원의 인건비 △미군의 군사 시설 건설 비용 △군수지원 비용으로 항목이 고정된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현행 SMA의 틀 자체를 깨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 측이 방위비와 전작권 전환 문제를 연계해 '별도의 협상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문제를 두고 한미의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사안은 미국이 전 세계의 주둔군 전반에 적용하는 조치의 일환으로 사실상 한미가 공평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사안은 아닐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미국의 '일방적 계획'에 맞춰 한국이 다른 사안을 제기해 안보 공백을 메워야 하는 사안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서는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 협정 개정을 수락하며 '통로'를 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SNS에 병력 감소 문제와 관련된 기사를 공유하며 '자주국방'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대통령은 "군사력, 국방력, 국력을 가지고도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굴종적 사고가 있다"라며 "우리는 외부의 군사 충돌에 휘말려도 안 되고, 우리의 안보가 위협받아서도 안 된다. 강력한 자율적 자주국방이 현 시기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언급했다.
이를 두고 한미 안보 협상에 차질이 있어 이 대통령이 '저격성' 발언을 한 것이라는 해석과, 주한미군의 역량이 한반도 안보에서 일부 빠져도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라는 관측이 동시에 제기됐다.
당초 안보 협상이 한미 외교+국방 장관이 참여하는 2+2 협의체에서 논의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협상 테이블이 크게 차려지지 않은 이유도 한미의 소통이 순탄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반면 관세 협상은 3500억 달러(약 487조원) 대미 투자 계획의 구성 방식에 대한 한미의 이견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31일 협상이 '타결'됐을 때만 해도 한미 양국이 모두 만족할 방안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후 후속 협상은 두 달째 공전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3500억 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투자할 것을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 또 투자에 따른 수익도 미국이 상당 부분을 가지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요구라고 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지난 22일 공개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통화 스와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3500억 달러를 인출해서 전액 현금으로 미국에 투자한다면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며 한미 간 이견이 큰 상황임을 시사했다.
종합적으로 관세 협상과 안보 협상에서 한미의 온도 차이가 뚜렷한 이유는 안보 협상은 한국이 예측 가능한 비용·전력 계획 안에서 교환 가능한 카드를 제시할 수 있는 반면, 관세 협상이 오히려 한국의 '명운'을 좌우할 수준의 논의로 확장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의 안보 현안에 크게 매달리지 않는 분위기"라며 "쟁점이 완전히 정리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협상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그러나 관세 협상에 대해서는 "대규모 투자금 구성·투자처 결정·이익 배분 등에서 한미 간 입장이 첨예하다"며 "이익의 고비율을 미국이 가져가는 구도는 한국이 순순히 응하기 어려운 조건인 데다, 조지아주에서의 한국인 구금 사태 이후 국내 여론 부담도 커 정부가 서둘러 양보하긴 쉽지 않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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