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설 북중러…"3각 밀착 부각" vs "세계관 다르다"
[전문가 진단] "3자 모여 '이미지 정치' 가능하겠지만…정상회담은 어려워"
'핵보유국' 입지 부각에 北도 한 발 걸치기 예상
- 노민호 기자,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김예슬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중국 '전승절'(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행사에 전격 참석하면서 북한, 중국, 러시아가 '3각 밀착'을 과시할 것이라는 관측과, 중국의 거리두기로 3자 간 유의미한 '결과물'은 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동시에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주요 우방인 북한과 러시아를 각별하게 대우하면서도, 북러와 결이 다른 외교적 방향성 때문에 이번 전승절이 3국의 밀착 계기로만 활용 또는 부각되는 것은 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별개로 김 총비서의 첫 다자외교 무대 데뷔라는 점에서 북한의 외교적 입지가 급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중러 3각 밀착은 그간 북한과 러시아의 의지로 추진돼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 군사적 밀착을 강화한 북러가 유럽, 미국과의 '전선'에 중국의 동참을 요구하면서다.
그러나 중국은 중러, 북중 양자관계는 주도적으로 챙기면서도, 북중러 3각 협력이 일종의 '소다자 협력체'처럼 공식화하는 것은 피해 왔다. 한 번도 3자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이 연출되지 않았던 이유다.
그 때문에 이번 전승절 행사에서도 북한과 러시아가 중국과 '한 프레임'에 담기는 모습을 자주 연출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역시 주요 우방인 이들의 외교적 노력을 억지로 거부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중국의 입장에선 여전히 국제질서에 반하는 무력 침공과 군사력 강화에 속도를 내는 러시아, 북한과 '한 편'으로 묶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글로벌 2강'을 자처하는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량국가'와 같은 진영에 있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 도움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사실 세계관이 다르다. 북러는 기존 국제사회 체제를 거칠게 거부하는 '수정주의'적 성향을 나타내는 반면 중국은 그렇지 않다. 북러가 주장하는 '신냉전'이나 진영주의에 결연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라며 "마치 한미일의 밀착과 같은 수준으로 북중러가 함께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미일에 대항하기 위한 북중러의 연대 행보는 있겠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하진 않을 것"이라며 "3자 간 정상회의는 어렵고 약식 회동 정도에서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이번 전승절을 '핵보유국 인정'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러시아 외에도 베트남과 라오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몽골, 파키스탄, 벨라루스 등 북한과 관계가 나쁘지 않은 26개국의 국가 정상 및 정부 고위급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각종 담화에서도 '핵보유국' 입지를 부각하면서 비핵화 대화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만일 이번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핵 관련 지지를 얻어낸다면, 마치 북중러가 나란히 핵보유국으로서 협력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의 구미를 당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의 바람과 달리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중러 및 다른 나라들의 외교적 제스처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범철 수석연구위원은 "중러 모두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한다는 의미의 선언이나 발언을 하진 않을 것"이라며 "북한을 아직 자신들과 동급으로 대우하긴 어렵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전문가는 "북한이 여러 국가로부터 핵보유국 입지를 인정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라며 "핵과 관련해선 북중러 3자의 입장이 다르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과 엮여 3국이 긴밀한 핵보유국으로 특화하는 것도 꺼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은 전승절 80주년을 맞아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열병식에서는 중국의 첨단무기가 과시됨과 동시에 항일전쟁을 상징하는 열병 행사도 예상된다.
중국에서 항일전쟁 '승리'는 '민족의 독립을 이룩하고, 공산당 성장의 전환점'이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북한도 건국 서사에서 항일 빨치산 투쟁을 강조하며, 만주의 항일 유격대 출신인 김일성 주석이 일본군과 싸운 경력을 국가 정통성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북한이 열병식에서 수시로 항일 빨치산 투쟁을 재연하듯, 중국도 이번 열병식에서 항일전쟁 역사를 부각해 '중화민족'의 부흥을 다지고 역사적 연대감을 북한과 공유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일본이 항복문서에 공식 서명한 이튿날인 9월 3일을 '항일전쟁 승리일'로 삼았다. 여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 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등장한 이후다. 2014년 항일전쟁 승리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고, 2015년 전승절 70주년 열병식 때도 '항일'을 주제로 내세우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2015년 당시 열병식에서는 팔로군, 동북 항일연군 등 10개 항일부대가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해 70개의 깃발을 선보였다. 동북 항일연군은 김일성 주석과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아버지 최현이 속했던 부대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중국이 항일전쟁 승리를 주제로 열병식을 진행한다면 북중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할 수 있다.
박원곤 교수는 "중국과 북한의 건국 서사는 완전히 같다"며 "중국은 항일전쟁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구성된 역사를 부각하고, 마지막에는 최첨단 무기를 보여주면서 중화민족의 부흥을 드러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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