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에 '역내 파병' 요청할까…주한미군 역할 변화의 함정

[한미동맹 현대화]③ 美, 인태지역 문제에 韓의 '적극적 개입' 요청 가능성
전문가 "韓 파병해야 할 수준의 역내 충돌 고조 가능성 작다"

한미 병사들이 함께 미 병참선 교량을 구축하고 있다. (육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11/뉴스1 ⓒ News1 이연주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미국이 추진하는 '한미동맹 현대화'로 인해 주한미군이 한반도 밖, 인도·태평양 지역의 현안에 적극 대응할 경우 장기적으로 한국군의 파병 요청도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22일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안보 지형과 우리 정부의 외교적 입지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인태 지역에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점을 들어 향후 중국 관련 역내 분쟁 시 한국이 직접 군을 개입시키는 상황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역내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이 파병을 검토·감수할 정도로 미국과 중국 간의 무력 충돌이 고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곧 美 '안보 청구서' 세부 내용 확인…트럼프 '돌발 발언' 단속 필요

한국과 미국은 오는 25일 진행될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방비(국방 예산)와 방위비분담금 증액,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등 이른바 '동맹 현대화'와 관련된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안보 청구서'의 세부 내용이 확인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즉 '전략적 유연성'은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의 역할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의 방어뿐만 아니라 중국 등 인태 지역 내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대만 침공 가능성을 열어두고 서해에서 내해화 작업을 시행하는 등 역내 영향력 확대를 본격화하자 미국도 이에 대응해 견제 수위를 높이면서 나온 개념이다. 그 때문에 미중 대립이 심화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한반도 밖의 상황에 대해서도 군 병력 파병을 요구하는 등 직접적인 개입을 원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지금까진 한반도를 제외한 역내 분쟁엔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지만, 미국은 역내 안보 환경 변화를 근거로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한국군도 더욱 적극적 행동에 나서길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은 이달 초 기자 간담회에서 "대만에 어떤 상황이 발생해서 미군이 개입할 때 한국도 가야 한다고 단정 짓는 건 적절하지 않다"라면서도 "동맹을 현대화하며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지금 당장 미국이 한국에 동맹으로서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긴 어렵지만, 대내외적 여건에 따라 여지를 열어두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주한미군의 역할이 바뀔 경우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밖에 없는 요구"라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2025년 훈련'을 실시한 지난 18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F-16 전투기가 착륙하고 있다. 2025.8.18/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역내 분쟁 심화 가능성 높지 않다" vs "'韓 개입 없다' 약속받아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국이 직접적인 파병을 검토해야만 하거나 미국이 이를 압박할 정도로 역내 분쟁이 심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관여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역내 사안이 중국의 대만 침공 및 남중국해 분쟁임을 고려할 때, 한국이 미국의 요구가 있더라도 중국과의 충돌을 감안해 이를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럽 국가들이 파병을 검토했던 건 러시아가 서쪽으로 진출할 시 이들이 지정학적인 위협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중국의 대만 침공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한국은 대만의 동맹국이 아니며, 일본처럼 지리적으로 인접한 것도 아니라 군사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민 교수는 이어 "미국의 경우 대만이 중국의 해상 군사력 강화를 막는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주둔 미군을 재배치할 이유가 있지만, 한국은 그럴 유인도 없다"라며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겪으면 물리적 수송 등 일부 편의 제공 정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도 "대만 침공 등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위협이 극대화된다면 북한의 돌발적 움직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미국이 한반도 안보에 위협이 될 정도로 병력을 재배치하거나 한국의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은 작다"라며 "지금 미국의 요구는 역내 환경 변화로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상당히 커졌으며,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지지를 보여달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국이 동맹 현대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 '한국군이 역내 상황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이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한다.

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주한미군의 역할에 변화가 생기고, 미중 갈등이 심화한다면 언제든 미국의 갑작스러운 요구는 제기될 수 있는 것"이라며 "첫 협상에서 한국군의 개입 불가를 명문화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국익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짚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