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방 지출 롤 모델"…갑작스런 美 발언, 정상회담 안건 던지기
콜비 국방차관 "한국, 북한 방어 주도적 역할…국방 지출 롤 모델"
한미 정상회담 전후로 '동맹 현대화' 본격 협상 개시 예상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이달 하순으로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동맹 현대화'와 관련된 안건을 구체화해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모양새다. 미국의 국방정책을 주도하는 핵심 인사가 한국을 국방 지출의 '롤 모델'로 지목하는 이례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면서다.
아직 한미 간 본격적인 안보 협상이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먼저 논의의 의제와 방향성을 굳히려는 의도로 해석된다는 분석이 6일 제기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국방정책을 이끄는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엑스(X)에 올린 글에서 "한국은 북한에 맞선 강력한 방어에서 더 주도적 역할을 맡으려 하며 국방 지출 면에서 계속 롤 모델이 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아직 협상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한국이 '롤 모델'이 되고 있다는 콜비 차관의 발언은 다소 이례적인 측면이 있다. 외교가에서는 이 발언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주요 협상 의제를 사전에 제시하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의 전략적 역할 변화, 중국 견제에 대한 기여 등 민감한 사안들을 정상회담 의제로 포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콜비 차관이 언급한 '국방 지출'은 트럼프 행정부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요구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국방 예산을 올려야 한다는 요구와 직결된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도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나토가 행동에 나선 만큼, 아시아도 예외일 수 없다"라고 발언하는 등 미국의 국방비 인상 요구는 상당히 선명해진 상황이다.
'북한에 맞선 방어에서 주도적 역할'은 그간 대북 억제에 집중했던 주한미군의 역할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구상을 공식화한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의 역할 중 일부를 중국을 견제하는 것으로 옮긴다면, 한국이 북한의 위협을 막는 책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콜비 차관의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이같은 요구사항을 이미 한국이 받아들였다는 취지로도 읽힌다. 이는 한미 간 낮은 단계의 채널에서 이미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도 시사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의 요구가 '협상 대상이 아니라 수용 대상'이라는 고강도 압박 차원의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선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안보 문제와 연계한 '패키지 딜'을 추진한바 있는 만큼, 관련 소통 과정에서 정부가 제시한 안보 관련 협상안에 대한 미국의 평가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이미 안보 협상에서도 한미 간 '공감대'가 설정됐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안보 사안에 기여하는 '대표 주자'로 삼으려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호주, 일본, 필리핀 등 향후 인태 지역에서의 안보 협상을 앞두고 한국을 먼저 협상 대상으로 삼아 '기준점'을 세우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콜비 차관의 발언은 안보 사안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구체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콜비 차관은 국방 지출을 언급하면서 방위비분담금 문제는 별도로 언급하진 않았다. 한미 간 안보 협상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국방비 인상'을 주축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중국과의 관계 재조정을 시도 중인 이재명 정부로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역할 확대나 대중 견제 참여 확대라는 미국의 요구가 외교적으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또 한미, 한중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최근 미국 방문 직후 워싱턴포스트(WP)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중국이 이웃국가에 문제가 되고 있다"라고 발언한 직후 중국 관영매체가 "미국과 동맹국의 반발을 우려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한국의 양면적인 태도"라고 미국을 언급하며 비난한 것만 봐도 한미, 한중, 미중관계의 복잡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즉답'을 원한다면 정부의 입장은 더 난처하게 될 수 있다. 관세 협상에 이어 정부의 '세밀한 외교'가 또 요구되는 상황인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이 국방비를 충분히 지출해 왔다는 인식과 별개로 미국은 GDP 대비 5%라는 국방비 인상의 기준을 정해 놓은 상황"이라며 "이달 말 정상회담에서도 국방비를 비롯해 전략자산 운용 비용, 연합훈련 확대 등 다양한 형태의 비용 분담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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