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오타니'로 통한 한일 청년들…"문화 교류가 우리를 잇는 끈"
[한일 국교정상화 60년] ⑤20대 한일 청년에게 듣는 한일관계의 미래
"젊은 세대가 보여줄 '문화의 힘' 생각보다 커…과거사도 더 잘 해결할 것"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손흥민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는 일본인, 오타니 쇼헤이에 푹 빠진 한국인 20대가 있다. 주어가 바뀐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하라 아야카(23) 씨와 차준호(26) 씨는 한일은 문화를 나누며 가까워질 수 있으며 문화 교류가 한일관계의 미래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만난 사이다. 잠깐 어색했던 둘은 이내 '삼소'(삼겹살에 소주)와 성수동 카페와 같은 한국의 '핫 플레이스'를 동경하는 일본의 청년들, 일본 애니메이션인 '진격의 거인'과 이자카야에 열광하는 한국인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하는 데 열중했다.
두 청년은 대학교에서 우연한 계기로 서로의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일본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오하라 씨는 본인의 지도교수가 '자이니치'(재일 한국인)라는 사실을 뒤늦게, 우연히 알게 됐다. 평소 일본 역사·문화에 대한 깊은 식견을 유창한 일본어로 뽐내던 교수님의 뿌리가 한국에 있다는 것과, 그가 일본에서 평생을 살았음에도 투표권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평소 트와이스(TWICE)와 방탄소년단(BTS) 등 한국 아이돌을 좋아하며 나름 한국 문화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한일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고 한다. 한일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한 계기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은 오하라 씨는 짧은 1년의 생활 동안 친구들로부터 한국의 '정'이 무엇인지 배웠다.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국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인 친구들이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친하지도 않은데 왜 자꾸 '밥 먹었냐'고 물어보는지 의아했죠. 그런데 나중에는 그 질문이 타인에 대한 관심의 표현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일본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한국 사회를 더 깊이 느끼고 싶었던 오하라 씨는 지난 2024년부터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는 최근 몇 년 사이 한일 커플의 국제결혼이 급증한 이유에 대한 연구 논문을 쓰고 있다고 한다.
오하라 씨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한국인 특유의 솔직함과 역동성 때문이다. 일본인은 '다테마에'(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겉마음)와 '혼네'(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구분할 정도로 쉽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본 사회에서 나고 자란 오하라 씨에게 한국인들의 의사 표현 방식은 거칠다고 느껴질 정도로 매우 직설적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한국인들의 솔직함에 당황하기도 했어요.'왜 저런 것까지 나한테 말하는 거지' 싶었죠.그러나 그런 특성 덕분에 한국인들은 사회적 문제를 빠르고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바꿔나갈 수 있는 거 같아서 굉장히 멋있다고 느껴요."
역사콘텐츠학을 전공한 준호 씨는 수업에서 우연히 '조선통신사'에 대해 배운 이후 한일관계에 큰 흥미를 느꼈다.
"외교를 위해 파견된 조선통신사가 당대 일본의 대중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 재밌었어요. 좋든 싫든 양국이 오랜 역사 속에서 함께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배웠죠."
준호 씨는 한일 청년세대 간 교류 프로그램들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난 2023년에는 주한 일본대사관이 주최한 '도쿄 한일 축제 한마당'에 참석해 일본인 학생들과 토크 콘서트 등의 부스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같은 해 서울시립 청소년 문화교류센터에서 주관한 '일본문화 탐방단'에 참여했을 때는 동일본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등을 방문해 그곳에 사는 대학생들과 만났다.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케이팝(K-POP)과 제이팝(J-POP), 한국 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주제로 대화하며 금세 친구가 됐다. 준호 씨는 이때 문화의 힘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이 '조화'(和)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인간관계에서 각자의 개성을 내세우기보단 타인과의 '상호 스며듦'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전통과 관습을 계승하는 것을 삶의 가치로 삼는다.
"일본 여행을 가면 지하철에서 꼭 와카(짧은 시)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발전한 나라임에도 과거의 것을 지켜나가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보면서 '빠른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는 것을 느꼈어요."
미래를 살아갈 두 사람에게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두 청년은 놀라울 정도로 망설임 없이 '문화'에 답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오하라 씨는 한국의 아이돌과 드라마는 이미 일본 대중문화에 녹아든 콘텐츠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삼겹살과 소주'와 같은, 한국사람만 즐길 것 같은 '소울 푸드'가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준호 씨도 "일본의 가장 전통적인 도시인 교토의 중심지 가와라마치에 갔는데 '미리내 양곱창'이라는 한국어 간판이 크게 붙어 있는 것을 봤다. 일본인들이 한국 소주를 마시고 있고, 가게 밖까지 웨이팅 줄이 늘어서 있는 걸 보고 정말로 깜짝 놀랐다"라며 거들었다.
준호 씨는 미국 프로야구(MLB)에 진출한 일본 야구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의 팬이다. 그는 "과거엔 스포츠에서 '한일전'이 열리면 '우리 편 이겨라'가 당연한 가치였지만, 이제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응원과 팬심이 더 두드러지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오하라 씨는 유럽에서 활약하는 축구선수 손흥민을 보며 자부심마저 느꼈다고 한다. 그는 "손흥민이나 이강인이 유럽 무대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생각보다 많은 일본인들도 반갑고 자랑스러워한다"면서 "좁게 보면 한일관계는 갈등으로 점철된 것 같지만, 넓게 보면 친밀한 이웃 국가임을 체감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일본군 강제 위안부, 조선인 노동자 강제징용 등 민감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었다.
잠시 고민하던 두 사람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과거의 일이 현재가 되고 미래로 이어지는 만큼, 양국 간 친밀한 협력과 별개로 과거사 문제는 반드시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과거사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청년 세대가 오히려 이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피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오하라 씨는 "한일의 기성세대는 양국 관계를 정치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아마 본인 또는 주변 사람들이 험난한 역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우리와 같은 청년 세대는 한발짝 떨어져 문제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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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가깝고도 먼 한국과 일본이 올해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았다. 과거사로 반목하면서도, 변화무쌍한 국제 정세에는 함께 대응해 왔다. 한일관계의 과거, 오늘, 미래를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통해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