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린도 탈환작전' 이끈 한문식 해군 대령…3월의 6·25전쟁영웅

피아식별 위한 '백포작전' 구사…미국·영국과 연합작전 성공

2024년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한문식 해군 대령.(국가보훈부 제공)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한국전쟁(6·25전쟁) 중 '서해봉쇄 작전'과 '창린도 탈환작전'에서 큰 역할을 수행한 한문식 해군 대령(당시 소령)이 '2024년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29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한 대령은 1945년 11월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에 입대해 임관 후 인천기지 갑판사관, 진해기지 인사관 등을 지냈다. 그는 김해정장으로 복무하던 중 1950년 6·25전쟁에 참전했다.

한 대령은 1950년 8월 6~7일 서해봉쇄 작전에 참전해 적 발동선 2척, 화물선 2척 등 다수의 범선을 격침했다. 이 작전으로 서해안을 통한 적의 무장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을 차단할 수 있었다.

1952년 7월 15일 적의 기습공격으로 서북 해역의 전략적 도서인 황해남도 옹진 창린도가 점령당하자, 해군은 미 해군 전투기의 지원을 받아 창린도 재탈환을 결정했다.

당시 금강산함 함장이었던 한 대령은 아군 함정들과 전투기들의 피아식별을 위해 상륙군인 유격대에게 흰 천 1장씩을 소유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백포작전(白布作戰)'을 제안했다.

한 대령은 1952년 7월 16일 새벽 140여명의 유격대가 탑승한 범선, 발동선을 창린도 남단으로 호송해 성공적으로 상륙시켰다.

한 대령은 이후 영국 순양함, 호위함, 미 해군 전투기 4대와 연합작전으로 포격 및 폭격을 개시했고, 이에 힘입은 유격대는 창린도 81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작전의 성공으로 아군은 적을 70명 사살했고 27명을 생포했으며, 무기도 다수 노획했다.

창린도 탈환에 기여한 한 대령은 휴전회담을 이용해 서해안 일대에 포대를 구축하고 해안경비요원을 증강시켜 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적의 기도를 좌절시키기도 했다.

정부는 한 대령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51년 충무무공훈장, 1952년 을지무공훈장, 1953년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