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립운동가' 신민회 주역 안태국 선생
북간도 지역서 독립만세 운동… 상하이 임정 참여
- 허고운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올해 '4월의 독립운동가'로 일제강점기 신민회와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등에 참여한 안태국 선생(1877~1920)이 선정됐다.
31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안 선생은 1877년 평안남도 중화(현재 평양 인근)에서 태어나 1907년 안창호·양기탁·노백린·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했다.
안태국 선생은 이후 신민회 최고위 간부인 평안남도 총감에 임명돼 1911년 이 조직이 해체될 때까지 국권 회복에 앞장섰다.
신민회 기관지 역할을 한 '대한매일신보' 평양지사장을 겸임하던 안 선생은 1909년 애국계몽운동을 위해 '태극서관'을 설립했고, 신민회 외곽조직 '청년학우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초대 총무에 선임되기도 했다.
일제는 1910년 11월 신민회가 간도에서 독립군 기지와 무관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란 단서를 포착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신민회 간부들을 체포했으며, 안 선생도 이때 붙잡혀 1911년 7월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제는 초대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 대한 '암살 음모사건'을 조작, 신민회 간부 600여명을 검거해 기소했다. 안 선생도 복역 중 가혹한 고문을 당하며 재기소돼 1912년 9월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그러나 안 선생은 공판 중 기억과 물증을 바탕으로 데라우치 암살 음모사건이 날조된 것임을 증명, 재판부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다. 그 결과 안 선생은 1913년 7월 항소심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안 선생은 투옥된 지 5년 만에 석방됐고, 1916년 북간도 훈춘(琿春)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안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훈춘 지방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고 후배들과 함께 한민회를 창립했다. 한민회 산하 한민회군은 청산리전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안 선생은 안창호 선생의 요청으로 1920년 3월 상하이 임시정부로 갔지만 요직은 고사하고 북간도 지역 독립운동에 매진할 뜻을 밝혔다. 안창호 선생는 이를 받아들여 안태국 선생을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임명했으나, 안태국 선생은 같은 해 4월 46세를 일기로 병사했다.
정부는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안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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