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징용피해자 추가확인.. 한일갈등 또다른 뇌관

최근 개인차원 배상 판결 맞물려 일본정부 압박 클듯
관동대지진·3.1운동 피살 명단 처음.. 사료적 가치

국가기록원 박경국 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와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 일제강점기시 피징용(징용)자 명부 등 총 67권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를 공개, 발표하고 있다.이번에 공개한 기록물은 일본 도쿄에 있는 주일한국대사관이 최근에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것이다. 2013.11.19/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조영빈 기자 =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학살 피해자 23만여명의 명단이 공개됐다.

기존 피해자 명단에 없던 명단이 추가로 발견됨으로써 추가 배상이 가능해 질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게 됐으며 동시에 지금까지 없었던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단도 발견돼 사료로서의 역사적 의미도 큰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차원 배상의 규모도 더 커지는 것이어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향후 한일갈등의 또다른 잠재적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전행정부가 19일 공개한 이 자료는 1952년 12월 15일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피해보상을 위한 한일회담이 진행되던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에 대비하기 위한 근거 자료일 가능성이 높다.

이 자료가 1965년 맺어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근거 자료로 활용됐는지에 대해선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에 없던 피해자 명부들이 추가됐다는 사실은 일제강점기 피해자 보상 문제가 새 전기를 맞았다는 것이어서 의미가 적지 않다.

◇ 징용자 배상 확대 등 한일 과거사 갈등 커질듯

이번에 발견된 명부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을 담고 있는 자료는 역시 23만명의'일정시(日政時) 피징용(징병)자 명부' 다.

이는 기존 정부가 가지고 있던 '왜정시 피징용자 명부' (28만명)보다 적은 숫자다. 그러나 기존 명부에 없던 이들의 신상정보가 담겨있다는 게 국가기록원 측의 설명이어서 이는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잠재적 인원의 확대 가능성을 의미한다.

일례로 경북 경산지역의 경우 피징용자 4285명 가운데 1000여명이 종전 명부에는 없는 새로운 명단으로 나타났다는 게 국가기록원 측의 설명이다.

이는 특히 최근 우리 사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차원의 배상 필요성을 인정함으로써 일본 정부와 재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일본 정부는 이들에 대한 피해 배상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마무리됐다는 입장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피해배상이 1965년 끝났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자, 수십만명에 이르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실질적인 배상 판결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일본 재계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명단 발견을 포함해 계속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명부가 추가로 드러나고 있는 점은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일본에 추가적인 압박을 가할 수 밖에 없는 요인으로 봐야 한다.

군대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일제강점기 이뤄졌던 일본 정부의 인권유린에 대한 국제적 여론도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일본 정부가 느끼는 압박도 커질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외교당국의 향후 입장 및 대처도 주목된다.

외교부는 최근 우리 사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린데 대해 아직 최종 판결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이에 대한 공식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외교 당국이 사법부 입장을 존중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경우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한일 간 과거사 문제 갈등을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 3·1 운동 및 관동 대지진 피살 최초 근거

이번에 발견된 문서 가운데 역사적 가치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즉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로 인해 일본에 전국적인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 데 따른 피해자 290명의 이름이 정리된 문서다.

물론 이는 학계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피해를 5000~2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에서 부인하고 있는 관동 대지진 학살 명부가 처음 발견돼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사료를 확보하게 된 점은 의미가 적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민간 학계의 연구에 머물던 역사가 외교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3·1 운동 피살자 630명의 이름이 확인된 것 역시 역사적 의미가 크다.

현재까지 3·1 운동 순국자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숫자는 391명이다. 순국자로 인정할 수 있는 인원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해왔지만, 사료가 없어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자료 발견으로 3·1 운동과 관련해서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인원이 최소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bin198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