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암 면역세포 깨운다"…세계적 폐암 석학이 주목한 韓 신약기술
기존 STING 치료 한계에 ENPP1 저해제 대안으로 부상
"티씨노 초기 임상 고무적"…항암제·ADC 병용 가능성 주목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암이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도록 막는 새로운 항암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항암제와 함께 사용한다면 치료 효과를 높이고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비드 바비 미국 다나파버 암연구소 박사는 지난 14일 서울에서 개최된 '2026 세계폐암학회(WCLC 2026)'를 계기로 취재진과 만나 차세대 항암 전략으로 '선천면역'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현재 널리 쓰이는 치료제인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의 '브레이크'를 풀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T세포가 암이 있는 곳까지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일부 암은 T세포를 불러들이는 신호를 차단해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때문이다.
바비 박사는 이 과정에서 STING(인터페론 유전자 자극인자)에 주목했다. STING은 세포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면역체계에 알리는 일종의 '경보기' 역할을 한다.
바비 박사는 "면역관문억제제가 주로 T세포에 작용한다면 STING 활성화는 인터페론을 유도하고 T세포와 자연살해(NK)세포가 종양으로 들어오도록 할 수 있다"며 "두 치료 방식이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STING 치료제는 동물실험과 달리 실제 환자에게서는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했다. 초기에는 약물을 암에 직접 주사했지만, 여러 장기로 암이 퍼진 환자의 모든 종양에 약효를 전달하기 어려웠다. 이후 전신 투여 방식도 개발됐지만, 약효가 지나치게 강하면 암을 공격해야 할 T세포까지 손상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겼다.
바비 박사는 "종양에서는 면역반응을 일으킬 만큼 STING을 충분히 활성화하면서도 과도한 전신 독성은 피해야 한다"며 "농도가 너무 높으면 오히려 종양으로 불러들이려는 T세포를 죽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이에 최근에는 STING을 외부에서 강하게 자극하기보다 암이 스스로 면역반응을 끄는 장치를 차단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표적이 'ENPP1'이다. ENPP1은 암세포에서 만들어지는 STING 활성화 신호를 없애는 역할을 한다. 이를 차단하면 종양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면역 신호를 살려낼 수 있다.
바비 박사는 "ENPP1을 억제하면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STING 활성화 신호가 축적될 수 있다"며 "외부에서 약물을 대량 투여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T세포 독성이 상대적으로 낮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비 박사는 국내 신약개발 기업 티씨노바이오사이언스의 과학자문위원회(SAB)에도 참가하고 있다. 그는 참여 이유에 대해 "티씨노바이오사이언스가 이미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ENPP1 저해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번 WCLC에서 공개된 티씨노바이오사이언스의 초기 임상 결과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바비 박사는 "특히 화학요법과 병용했을 때 초기 단계에서 매우 고무적인 활성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러 환자에서 상당히 긴 반응과 인터페론 활성화 지표가 함께 관찰된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초기 임상인 만큼 실제 효과와 안전성은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향후에는 항체약물접합체(ADC)와 ENPP1 저해제를 함께 사용하는 방법도 주목된다. ADC가 암세포를 찾아가 항암제를 전달해 암세포에 손상을 입히면, ENPP1 저해제는 이때 생긴 면역 신호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 면역세포까지 암을 공격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바비 박사는 "두 치료제를 함께 사용하면 T세포와 자연살해(NK)세포를 종양으로 더 많이 불러들일 수 있다"며 "이를 통해 EGFR 변이 폐암에서 ADC의 치료 효과를 더 오래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선천면역 치료가 곧바로 암의 완치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대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바비 박사는 "선천면역 치료가 치료반응과 인터페론 활성화를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치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아직 확인해야 한다"며 "결국 환자를 완치하려면 T세포가 종양을 찾아 공격해야 한다. 이것이 장기적인 궁극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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