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새벽 맨홀 열어보니…하수서 나온 '마약 흔적'

식약처, '2025년 불법 마약류 사용 실태조사' 후일담 공개
코카인·엑스터시 등 '클럽 마약류'와 합성대마 대거 검출

지난해 10월 31일 서울 클럽 밀집 지역에서 하수 채수 작업을 하는 식약처 직원들의 모습 (식약처 제공)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지난해 10월 31일 핼러윈 새벽. 화려한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이던 시간, 안전모와 안전조끼를 챙겨 입은 들이 맨홀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바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약리마약연구과 박수정 연구관과 연구팀이었다.

10일 식약처에 따르면, 당시 연구원들은 경찰의 협조를 받아 맨홀 뚜껑을 열고 그 아래 흐르는 하수를 채취했다. 사람들이 먹거나 투약한 마약류는 몸에서 대사된 뒤 소변 등을 통해 배출된다. 하수에 남은 미세한 흔적을 분석하면 어느 지역에서 어떤 마약류가 사용됐는지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식약처는 2020년부터 전국 하수처리장에서 이같은 '하수 역학조사'를 해왔다. 하지만 하수처리장 한 곳에는 하루 최대 수백만 톤의 생활하수가 모이기 때문에 마약류 성분도 그만큼 희석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하수가 처리장으로 흘러가 희석되기 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직접 채취해 보기로 했다. 이들이 지난해 핼러윈 새벽 서울 클럽 밀집 지역을 찾은 이유다.

현장은 예상보다 녹록지 않았다. 밤 10시까지만 해도 한산하던 거리는 새벽 1시가 되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연구원들은 새벽 1시와 3시, 7시 세 차례 맨홀을 열어 시료를 채취했다. 한 팀이 거리에서 하수를 뜨는 동안 다른 팀은 인근 숙소에서 가져온 시료를 밤새워 여과했다.

새벽 2시부터는 비까지 내렸다. 안전모와 조끼를 입고 빗속에서 맨홀을 들여다보는 연구원들을 본 시민들은 이들을 하수관 정비 작업자로 생각했다. "새벽까지 고생하신다"며 우산을 건네는 시민도 있었다.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술집에 들어가면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각종 코스튬으로 꾸민 사람들 사이에서 작업복 차림의 연구원들이 오히려 '핼러윈 분장'을 한 사람처럼 보인 것이다. 한 술집 사장은 밤샘 작업을 이어가는 연구원들에게 따뜻한 어묵탕 한 그릇을 말없이 내어주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1일 새벽 3시 33분 식약처 직원들이 서울 클럽 밀집 지역에서 하수 채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식약처 제공)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우며 얻은 하수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기존 하수처리장 조사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코카인과 MDMA(엑스터시), 케타민 등 이른바 '클럽 마약류'와 합성대마가 검출된 것이다.

특히 같은 장소를 할로윈이 아닌 평범한 주말에 조사했을 때는 나타나지 않았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약류 사용 양상이 지역뿐 아니라 특정 행사나 시간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지난달 식약처는 하수처리장과 상위배수분구, 인구밀집지역에서 채취한 하수 시료를 분석한 '2025년 불법 마약류 사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식약처는 조사 과정에서 예년과 비교해 채수 지점과 채수 방법을 대폭 손질하고 분석 대상도 기존 15~22종에서 243종으로 확대한 결과, 메스암페타민(필로폰) 등 불법 마약류 31종과 졸피뎀 등 의료용 마약류 25종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하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흘러간다. 앞으로도 연구진은 하수처리장뿐 아니라 특정 시간과 장소를 겨냥한 조사를 통해 기존 조사에서 놓칠 수 있었던 마약류 사용의 신호를 더욱 촘촘하게 찾아낼 계획이다.

축제가 한창이던 핼러윈 새벽, 사람들이 거리 위에서 밤을 즐기는 동안 연구원들은 그 아래를 흐르는 하수에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