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편의점 상비약 확대…'국민 편의' vs '안전성' 충돌

정부, 연말까지 품목 최대 20개로 늘리고, 판매 장소도 확대
시민단체 "접근성 높여야"…약사회 "오남용 등 안전성 우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판매 중인 상비약. 2026.6.23 ⓒ 뉴스1 최지환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정부가 14년 만에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을 확대하고 약국과 24시간 편의점이 없는 지역에서는 일반 소매점에서도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국민 편익을 위해 편의점 상비약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는 한편, 약사단체 사이에서는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보다는 안전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22일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6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을 기존 11개에서 법정 한도인 최대 20개까지 확대하고, '무약촌' 등 의료 취약지역의 판매장소도 늘리는 방안을 연말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제도는 심야나 공휴일 등 약국 이용이 어려운 시간대 국민들의 의약품 구매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2012년 도입됐다.

현행 약사법은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을 최대 20개로 제한하고 있으며, 현재는 해열·진통제 3종과 소화제 4종, 감기약 2종, 파스 2종 등 총 11개 품목이 판매되고 있다. 주로 가벼운 증상이 있을 때 환자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들이다.

복지부는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품목 수를 늘리는 동시에 판매 장소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는 24시간 연중무휴 편의점에서만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약국과 24시간 편의점이 모두 없는 농어촌 등에서는 일반 소매점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약사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전국 3306개 읍·면·동 가운데 약국이 없는 지역은 556곳으로 전체의 약 15%를 차지한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정책이 국민 편익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품목이 확대되면 상처 치료제와 지사제, 제산제 등 일상적으로 수요가 많은 일반의약품도 편의점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단법인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제도 도입 이후 14년 동안 품목 교체나 확대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민들이 야간이나 공휴일에 필요한 약조차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연말까지 품목 확대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소비자들의 요구도 적지 않다. 시민네트워크가 지난달 발표한 소비자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5.8%가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에 찬성했다. 응답자의 83.8%는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구매 이유로는 '공휴일이나 심야에 급하게 약이 필요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정은경 보건복지부장관이 지난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년 하반기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내용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7.16 ⓒ 뉴스1 김기남 기자

반면 약사단체는 의약품 접근성보다 안전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의 복약지도 없이 의약품을 판매하면 일반 소비재처럼 인식돼 오남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처방약과의 상호작용이나 동일 성분의 중복 복용으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을 근본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편의점 상비약 판매를 확대할 것이 아니라, 공공심야약국 확대 또는 단골약사제 등 약사의 복약지도를 받을 수 있는 공공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품목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안전장치 마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교수는 "감기약처럼 흔히 사용하는 의약품도 과다 복용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일정 수준의 오남용 우려는 존재하지만, 이같은 이유만으로 품목 확대를 막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판매 수량 제한 등 보완 장치를 마련하면 안전성과 접근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약업계도 이번 제도 개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편의점은 심야와 공휴일에도 운영되는 만큼 판매 품목이 확대되면 일반의약품 시장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정부는 앞으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해 연말까지 품목 지정 고시와 관련 제도 개선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아직까지는 복지부가 대한약사회 등과 공식적으로 협의를 시작한 단계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정부가 약사단체들과의 이견을 좁히고 안전성 기준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