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가 한국인 혈압 잡았다…"고혈압관리 세계적 모범국"
김치냉장고 보급·식품업계 염분 저감으로 나트륨 섭취 23.7% 감소
건보·심평원·동네의원 삼각축 구축…혈압 조절률 62%로 세계 최고 수준
- 구교운 기자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라면과 김치 등 짠 음식 소비가 많은 한국이 세계적인 고혈압 관리 모범국으로 평가받았다.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The Lancet)은 최근 한국의 고혈압 관리 성공 사례를 소개하며 김치냉장고 보급에 따른 나트륨 저감 효과와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 저렴한 약제비, 지속적인 환자 관리 시스템을 주요 비결로 꼽았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랜싯은 지난 6일 발간한 '고혈압 관리: 한국의 성공 스토리(Hypertension control: a South Korean success story)'를 통해 한국이 세계에서 드물게 인구 집단 차원에서 고혈압 관리에 성공한 국가라고 평가했다. 랜싯은 논문 영향력 지수 1~2위를 다투는 최고 수준의 학술지다.
세계적으로 고혈압 환자는 약 17억 명에 달하지만 적절히 혈압이 조절되는 비율은 20% 미만에 불과하다. 랜싯은 고혈압이 심혈관질환의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 가운데 하나이며 심근경색과 뇌졸중, 만성콩팥병, 치매 등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지난 15년간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추진한 정책을 통해 고혈압 관리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비영리단체 '리졸브 투 세이브 라이브즈'(Resolve to Save Lives)의 톰 프리든 최고경영자(CEO)는 랜싯에 "한국의 고혈압 관리 성공 사례는 검증된 개입 정책의 결과로 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랜싯은 특히 한국의 나트륨 저감 정책에 주목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2년 국민 나트륨 섭취량을 20% 줄이기 위한 국가 계획을 수립하고 식품업계와 협력해 가공식품의 염분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김치냉장고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랜싯은 김치냉장고 도입으로 김치를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과거처럼 많은 소금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는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 감소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성인 나트륨 섭취량은 정책 시행 2년 만에 23.7% 감소했다.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HIRA)의 관리 시스템도 성공 요인으로 꼽혔다. 랜싯은 의약분업 이후 환자들이 의사의 진료와 처방을 지속해서 받게 됐고 심평원이 스크리닝·투약·재방문을 추적하며 미달 기관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혈압 조절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현창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랜싯에 "국가건강검진 참여율이 70~80%에 달하면서 숨어 있는 고혈압 환자를 조기에 발견할 기회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저렴한 약값도 강점으로 꼽혔다. 랜싯은 칼슘채널차단제(CCB)와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등 효과적인 혈압약이 낮은 본인부담금으로 처방되고 있으며 복합제 처방 비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한국의 혈압 조절률은 약 62%까지 상승했다. 랜싯은 20년 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태국의 혈압 조절률이 현재 23%에 머무는 것과 비교하며 양국의 차이는 의료 인프라보다 정책 우선순위와 제도적 의지에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랜싯은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량이 여전히 권고 수준의 약 2배에 달하며 서구화된 식습관과 비만 증가, 고령화로 인해 고혈압 유병률 감소 폭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광일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은 "정부와 학회, 일차의료 의사가 함께 문제를 논의하고 전략을 세우는 것이 고혈압 관리 개선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kuk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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