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 권리, 상병수당 효과 있지만 재원·대상·보상 수준 쟁점
내년부터 본 사업…설계 따라 1115억에서 2.8조까지 소요
노동계·경영계·의료계 등 사회적 합의 관건…조정 나서야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노동자들이 아플 때 쉴 수 있도록 소득을 보전해 주는 '상병수당'이 수급자의 불안 해소, 의료접근성 향상 등 긍정적 효과를 낳았지만 조달 재원, 적용 대상, 보상 수준 등 논의해야 할 과제 역시 만만찮다. 범정부 차원의 사회적 협의·조정 체계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뒤따른다.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 4일 '상병수당 시범사업의 성과평가' 결과를 확인했다. 지난 2022년 7월부터 3단계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업무와 관련 없는 부상·질병 때문에 일하기 어려운 사람이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현재 경기 안양, 경기 용인, 강원 원주, 충북 충주, 충남 홍성, 전북 익산, 전북 전주, 대구 달서 총 8개 시군구에서 운영되고 있다. 상병수당 수급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제적 불안감이 감소했으며 제때 치료받은 비율은 10.1%p(포인트) 올랐다.
특히 유급병가 혜택을 받기 어려운 30인 미만 중소 사업장 노동자에서 제때 치료받은 비율은 17.1%p 증가했으며 아픈 기간 중 일한 날 비율은 32%p 감소했다. 비수급자를 포함한 시범사업 지역 주민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제도 인식과 의료접근성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인용한 운영 실적을 보면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수급자는 1만 3945명으로 이들은 평균 30.3일간 약 143만 원을 받았다. 수급자 중 여성(56.8%)이 남성(43.2%)보다 많았다.
연령별로는 50대(40.3%·5619명)가 가장 많았으며 60대(20.9%), 40대(23.8%)가 뒤를 이었다. 나이가 많을수록 수급자가 많았다. 직종으로 나누면 비사무직(74.3%)이 전문·사무직(25.7%)보다 많았다. 수급 원인은 부상·사고(29.7%), 근골격계 질환(25.5%), 암(21.9%) 순이었다.
수당을 받게 됨으로써 아픈 날 중 출근한 날 비율은 33%에서 17.8%로 줄어든 반면 제때 치료받은 비율은 59.9%에서 70.2%로, 충분히 치료받은 비율은 48.1%에서 55.9%로 각각 올랐다. 제도가 소득 보전은 물론 노동자의 건강권과 공중보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만 시범사업은 핵심 목적인 '소득 보전'을 충족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행 3단계 사업은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가 아니면 최저임금의 60% 수준의 정액 급여를 지급하고 있어 실제 소득을 충분히 보전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취지다.
또한 상병수당 보장 기간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상 26~52주인데, 국내 시범사업은 최대 120~150일로 짧다. 안태훈 예산정책처 분석관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현재 제도는 '도입 단계'로 최소 기능은 하고 있지만,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복지부는 각종 결과와 노동계·경영계·의료계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2027년부터 본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상병수당은 조달 재원, 적용 대상, 보장 수준 등 전반에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정책이므로 단순 의견 수렴을 넘어 갈등 구조를 반영한 실질적 합의가 필요하다.
복지부는 전체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모형을 도입하면 대기 및 보장 기간에 따라 연간 약 1115억 원~4151억 원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책 설계에 따라 연간 2조 8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된 연구들도 있어, 추계 간 편차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상병수당을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운영할 것인지, 고용보험과 연계할 것인지 또는 독립된 사회보험으로 설계할 것인지에 따라 제도의 성격과 지속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9개국은 사회보험, 5개국은 조세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사회보험 방식은 기여와 급여의 정합성이 높고 광범위한 취업자를 포괄할 수 있지만 보험료 인상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예상된다. 국내 시범사업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가동되나 제도 성격을 고려할 때 고용보험과의 연계, 독립된 사회보험으로의 운영도 비교·검토해야 한다.
이에 대해 예산정책처는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보장 수준 간 균형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단계적 도입 전략을 통해 재정 부담을 분산시키는 접근이 요구된다"며 "다수 국가의 상병급여 제도는 고용주가 제공하는 '병가'와 사회보험을 결합한 혼합형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현행 복지부 중심의 추진체계로는 정책 설계와 사회적 합의 도출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범정부 차원의 협의·조정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며 "단순 의견 수렴을 넘어 갈등 구조를 반영한 실질적인 합의 체제를 마련하는 게 제도 정착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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