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돌봄은 '지출' 아닌 사회적 '투자'다
통합돌봄, 법 시행만으로는 부족, 이제는 '연료'를 채울 때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돌봄과미래 교육연수위원장)
우리 주변을 보면 부모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딸이 있고, 치매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어 아르바이트조차 못 하는 아들이 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간병하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24시간 묶여 있다"고 말하는 며느리도 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 돌봄 청년의 61.5%가 우울감을 호소했다. 돌봄은 오래전부터 가족의 미담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와 건강을 잠식하는 구조적 문제였다. 이런 고통을 모두 숫자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손실만큼은 추산이 가능하다.
한국은행 조사국 보고서는 2022년 기준 돌봄 공백의 기회비용을 최저임금 기준 연 11조 원, 평균임금 기준 19조 원으로 추정했다. 돌봄 때문에 일을 그만두거나 줄인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면 벌었을 소득의 합계다. 여기에 경력 단절, 가족 갈등, 사회적 고립과 고독사까지 더하면, 진짜 손실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돌봄의 공백은 우리 사회의 복지의 빈칸이면서 동시에 노동시장의 구멍이다.
물론 11조에서 19조 원이 전부 순손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누군가 대신 돌보는 체계를 만드는 데도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 금액이 돌봄 체계만 갖추면 자동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며, 재취업 지원과 노동시장 정책이 함께 따라가야 비로소 회복될 수 있는 잠재적 가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돌봄에 쓰는 재원이 단순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시범 분석에 따르면 공적 돌봄 재원 1조 원은 돌봄 노동자의 임금과 소비를 거쳐 경제 전반에서 약 4.6조 원의 소득 효과를 유발한다. 2020년 기준 돌봄 지출이 유지하는 일자리도 103만 명에 달한다. 두 연구는 서로 다른 모형에 기반하므로 수치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돌봄을 가족에게만 맡기면 경제는 위축되고, 사회적으로 투자하면 가족의 삶과 지역경제가 함께 살아난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2026년 3월 돌봄통합지원법이 전국에서 시행됐다. 읍면동 주민센터를 통해 돌봄 필요도를 파악하고,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하겠다는 취지 자체는 옳다. OECD 주요국에 비해 늦은 출발이지만, 분절돼 있던 서비스를 하나의 법적 틀로 묶으려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러나 시행 첫해부터 세 가지 결핍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 돌봄 관련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반응해 증액된 것이 914억 원이다. 복지부 한 해 예산 137조 원의 0.07% 수준이다. 지자체당 실질 사업비는 2억 원이 채 안 되는데, 나머지는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구조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에는 가용 재원이 없다.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뒷받침하지 않으면, 통합돌봄은 연료 없는 세단에 머물 수밖에 없다.
둘째, 인력이 부족하다. 관련 연구용역에서 추계한 필요 인력의 절반 수준인 5,346명만 배정됐다. 그간의 통계에 따르면 돌봄 현장의 핵심 인력인 요양보호사의 1년 내 이탈률은 68%에 이른다. 케어매니저 같은 사례 관리 전문가도 없는 상황에서 현장 인력마저 이탈하고 있다. 돌봄노동의 처우와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인력난은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셋째, 제도 간 연계가 여전히 약하다. 그동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사회서비스는 각각 따로 움직여 왔다. 의사는 환자의 냉장고 사정을 몰랐고, 복지사는 환자의 처방전을 몰랐다. 이런 분절을 극복하지 않으면 통합돌봄은 이름만 통합일 뿐이다. 가족이 서류를 들고 창구를 전전하며 사실상 무급 통합 지원사를 떠안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방향까지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돌봄의 목표 자체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통합돌봄의 목표는 AIP(Aging in Place), 살던 곳에서 늙어가는 데 머물러 있다. 그러나 혼자 남겨진 채 서비스를 기다리는 것이 좋은 노후라고 보기는 어렵다. 집은 장소이지만, 돌봄은 관계다. 이제는 AIC(Aging in Community), 지역사회 속에서 함께 늙어가는 구조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 구체적인 모습이 지난해 '100인의 돌봄 시민회의'에서 제안된 '돌봄 편의점'이다. 편의점이 편의점인 이유는 가깝고, 자주 열려 있고, 필요한 것을 한 번에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돌봄도 그래야 한다. 주민센터와 복지관, 보건소와 장기요양기관, 지역의 시민조직을 하나의 생태계로 엮어 방문요양, 식사 지원, 병원 동행, 치매 상담, 가족 휴식 지원, 이웃 자조 모임을 연결하는 동네 거점이 필요하다. 요양병원에 머무는 30만 명의 사회적 입원 비용을 이런 지역사회 인프라에 재투자한다면, 돌봄의 풍경은 달라질 수 있다. 돌봄은 중앙정부가 설계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동네에서 작동해야 한다.
돌봄은 단순한 소비성 지출이 아니다. 하지 않았을 때 더 큰 비용이 되어 돌아오는 사회적 투자다. 무엇보다 돌봄은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기 이전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의 기본 기능이다. 가족의 희생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연료를 채우고, 사람을 붙잡고, 제도끼리 서로 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통합돌봄은 법전 속의 선언이 아니라, 시민이 체감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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