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HL, 희귀하나 희귀하지 않은 병…月 2261만원 약값에 환자들 '한숨'
[희귀질환 인터뷰] 정미경 한국폰히펠린다우증후군 환우회 총무
환자 우울·고립 심각…"정부, 웰리렉 '치료제' 외면 말길"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좋은 약인 걸 눈으로 몸으로 알지만, 경제적 이유로 사 먹을 수 없는 환자들 심정 이해하시나요? 질환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고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힘듭니다. 하루빨리 치료제 '웰리렉'을 복용할 날만 기다립니다."
한국폰히펠린다우증후군(VHL) 환우회 총무 정미경 씨는 뉴스1에 노트 두 권을 꺼내줬다. 매달 2261만 원의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정부에 도움을 청하는 폰히펠린다우 증후군(VHL) 환자와 그 가족의 청원이 담긴 수기집이었다. 1991년생인 정 씨의 딸도 이 질환을 앓고 있다.
폰히펠린다우 증후군은 종양을 억제하는 유전자 중 하나인 'VHL 단백질'의 변이로 발생한다. 이를 처음 발견한 의사 폰히펠과 병리학자 린다우의 성을 따왔다. 인구 3만 6000명당 1명에게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우리 몸에 총 10개의 종양을 유발한다.
종양은 크기가 커지면서 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고 신장, 췌장 등에 발생할 경우 각각 신장암, 췌장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증상이 나타나는 나이는 이르면 10대 후반, 평균적으로 26살. 환자로선 종양절제 등 많은 수술을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우울감과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
5년 전 건강검진을 받은 정 씨 딸은 신장, 부신, 난소, 췌장에 종양이 있고 폰히펠린다우 증후군이 의심된다는 결과를 접했다. 여러 진료 끝에 신장에서 시작됐으며 유전이 아닌 돌연변이에 의한 발병이란 얘길 들었다. 2022년 신장 수술과 난소·부신 종양 절제 수술을 함께 받았다.
딸은 종양이 발견된 신체 부위 중 수술로 절제 가능한 부위의 수술을 모두 받았다. 정 씨는 "누가 주치의인지 모를 만큼 여러 진료과를 다녔다"며 딸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준 게 자기 때문인가 자책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유전자 변이를 되돌릴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지만 치료제는 있다.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2023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엠에스디(MSD)의 웰리렉(성분명 벨주티판)이라는 약이다. 종양의 크기가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커지는 걸 억제하는 효과를 가졌다.
정 씨 딸이 진단받을 당시에는 이 약이 국내 허가되지 않았었다. 딸을 이민 보내는 방법도 고민했다. 그러나 자신처럼 이 약을 구하고 싶은 가정이 있고, 그 수요를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실제 수기집엔 다양한 환자들의 얘기가 담겨 있었다.
환자 A 씨는 미국에 사는 자녀가 내준 약값 덕분에 두 달 만에 걸어서 퇴원할 만큼 호전됐다. 하지만 자녀에게 부담을 지우기 싫어 약을 끊은 결과 다시 나빠지고 있다. 또 다른 환자 B 씨는 안구 내 종양 치료를 다른 주사제로 이어가고 있지만 근본적 치료가 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완전히 시력을 잃지 않기 위해선, 완전히 걸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웰리렉 복용이 절실하다. 일부 환자의 가정엔 이미 신장암, 췌장암으로 세상을 뜬 가족이 있을 정도로 환자 개인의 고통은 개인의 일이 아니다.
웰리렉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24년부터 건강보험 적용 논의가 이뤄졌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따라서 매달 2261만 원에 달하는 약값을 환자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직접 수입한다면 관세까지 포함, 약값이 3배 이상 불어난다.
정 씨는 환자와 가족의 사연을 알려 건강보험 적용 공론화를 이끌고자 지난해 4월 한국VHL환우회를 만들었으며 총무를 자처하고 있다. 환자와 가족이 모인 카카오톡 대화방을 매개로 전국에서 탄원서를 받았으며 국회 국민동의청원으로 단숨에 5만 명의 동의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웰리렉은 여전히 비급여 약으로 머물러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약값의 10%만 환자가 부담할 수 있는데, 정부 등의 답변은 현재까지 원론적이기만 하다. 건강보험을 적용해 줄 만큼 적정성을 따지기 어렵다는 게 보험당국 입장이다.
정 씨는 "환우회에는 환우와 가족 84명이 활동 중"이라며 "모든 환우에 반복되는 수술의 트라우마가 있다. 수술을 걱정하는 환우에게 '아프지 않아요, 잘 견딜 수 있습니다' 다독일 수밖에 없다"며 "웰리렉을 먹으면 반복될 수술을 줄일 수 있으니 간절하게 외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우회에서 웰리렉을 자부담해 복용 중인 환자가 13명이다. 하루 3알 복용이 정석이지만 경제적 이유로 1알씩 복용하는 환자가 많다"며 "(그렇지 않은 환자의 경우) 뇌 수술, 신장 수술, 척수 수술, 냉동치료, 레이저 치료 등 반복되는 수술에 지쳐가고 있다"고 전했다.
정 씨는 "이 병은 활발히 활동해야 할 20~40대를 덮친다. 월급으로 감당하기 어렵고 아픔만 참고 있다"며 "국회 청원심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로부터 오는 31일까지 심사를 연장하겠다는 공문만 총 5회 받았다. 청원심사위원회가 단 한 번이라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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