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신뢰 잃은 의료정책, 책임의 출발점은 정부다

 구교운 바이오부  팀장
구교운 바이오부 팀장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의료는 신뢰를 전제로 작동한다. 환자는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의사에게 맡기고 국가는 의료 체계를 설계하며 의료인은 그 제도 안에서 전문성을 행사한다. 이 관계를 지탱하는 힘은 법이나 규제보다 신뢰에서 나온다. 지난 1년간 보건복지부와 의료계를 출입하며 확인한 것은 그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의대 정원 확대 논의 과정은 그 단면이었다. 의료계는 위원회 구성과 추계 모형을 문제 삼았고 정부는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날 때마다 "방향을 정해놓고 속도만 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뒤따랐다. 추계 결과가 나와도 곧바로 해석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소통을 위해 만든 기구였지만 결과는 또 다른 논쟁의 출발점이 됐다.

응급실 미수용,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반복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보호자는 의료진의 책임을 물었고 의료진은 구조적 한계를 설명했다. 정부는 제도 보완을 약속했지만 설명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로의 판단과 해법을 믿지 못한 채 사건은 원인 규명보다 책임 공방으로 흘렀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의료사고는 형사 고발로 이어지고 의사는 "언제든 수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부담을 토로했다. 환자는 설명을 신뢰하지 못해 형사 절차를 선택하고 의사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 방어 진료에 나섰다. 고위험 진료는 기피되고 기록과 서류는 늘어났다. 신뢰의 빈틈을 법적 대응이 대신하는 구조다. 그러나 처벌과 소송의 증가가 신뢰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불신이 커질수록 제도는 더 만들어진다. 협의체가 꾸려지고 지침이 보완되고 위원회가 확대된다. 그러나 제도는 설계할 수 있어도 신뢰는 설계되지 않는다. 신뢰의 빈틈을 제도로 막으려 하지만 신뢰 없는 제도는 힘을 얻기 어렵다.

신뢰 회복의 출발점은 결국 정부여야 한다. 의료 정책 방향을 정하고 제도를 설계하며 예산을 배분하는 권한은 정부에 있다. 의대 정원 역시 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권한을 가진 주체는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진다. 공공정책 영역에서는 권한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정책을 집행할 힘을 가진 쪽이 먼저 일관성과 책임을 보여야 신뢰의 토대가 생긴다.

정부가 약속한 필수의료 보상 강화, 지역의료 인프라 확충, 교육의 질 담보 방안이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불신은 구조화될 것이다. 약속이 반복적으로 이행되고 정책의 수정과 보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신뢰는 회복될 수 있다. 신뢰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행동이 축적된 결과다.

의료는 강제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제도가 설계되는 것과 그 제도가 현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난 1년간 반복된 장면들은 제도 이상의 과제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의대 정원은 정해졌지만 관계는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정책은 또 다른 갈등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kuko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