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 입은 ○약사"…약국가 30년 다툼, 정부 중재 언제쯤
일반의약품 판매 두고 갈등…한약사 개설 약국 지속 증가
약사회 "한약국으로 표기하도록 해야"…국회 앞 결의대회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한약학과를 졸업한 한약사가 자신의 업무 범위, 면허 범위가 아닌 약국을 개설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무법천지의 상황은 임계점을 넘어 폭발 지경입니다. 정상적인 나라를 갈망하는 대한민국 9만 약사들은 문제 해결에 국회와 정부가 적극 나서주실 것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권영희 대한약사회장(10월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30년간 미해결된 약사와 한약사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한약사 개설 약국이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이용객으로선 구분하기도 어려워 업무 경계 불명확에 따른 일반의약품 판매 등 알권리·선택권·건강권 측면의 피해도 우려된다. 대한약사회는 정부, 정치권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오는 4일 국회 본청 앞에 집결한다.
한약사는 지난 1993년 약사법 개정을 통해 한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능을 육성한다는 취지 아래에 신설됐다. 약사법 2조는 '한약사란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藥事) 업무를 담당하는 자'라고 규정됐다. 이에 따라 약사 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한약사들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게 면허 밖 행위라고 약사들은 주장한다.
다만 한약사들은 '약국은 약사와 한약사만 개설할 수 있다'는 약사법 20조와 '약국 개설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 없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약사법 50조를 앞세운다. 불명확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30년 넘게 약사와 한약사가 다툴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사이 한약사가 차린 약국은 빠르게 늘고 있다.
한약사 개설 약국은 지난 2023년 기준 838개로 2019년 701개 대비 약 20% 증가했다. 이 기간 전체 약국이 2만 2493개에서 2만 4707개로 약 10% 늘어난 데 비해 증가세가 가파르다. 약사 등의 명찰 패용 의무화에 따라 약사, 한약사, 실습생 명칭과 이름이 함께 표시된 명찰을 달아야 하지만 혼선을 주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일부 한약사가 가운데 펜을 꽂아 명찰의 '한'(약사)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은 "의사는 의원을 개업하고 한의사는 한의원을 개업하듯 뚜렷이 구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한약사들이 본연인 한약은 취급하지 않고 약탕기도 구비하지 않은 채 똑같은 약국 간판에 가운을 입고 일반 약을 불법 판매하고 있다"면서 "국민은 약사와 한약사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약사회는 정부 등에 △한의사-한약사 간 한방 의약 분업 △한약국 표기에 따른 알권리·선택권·건강권 보장 △한약사 일반의약품 판매 명확화 △약사-한약사 간 교차 고용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대한약학대학학생협회도 최근 성명서를 내 "정부는 30년 된 한약사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제도 도입의 본래 취지가 지켜지도록 제도를 정립하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약사 출신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약사가 약사를 고용해 일반 약국을 열더라도 약국의 실제 소유주인 한약사의 고유 업무에 한해서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달 26일 대표 발의했다. 불법적인 한약사들의 전문의약품 조제를 막고, 한약사가 약사를 고용한 채 이뤄지는 조제도 차단하는 취지다.
양측 갈등을 의제로 올려 논의할 정부 조직은 내년 출범을 목표로 둬 단시간 내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인력의 구체적인 업무 범위와 조정 등을 심의할 수 있는 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위원회를 설치·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보건의료기본법이 내년 2월 시행됨에 따라 업무조정위의 구성·운영을 위한 세부 사항을 정하는 시행령을 최근 입법 예고했다.
업무조정위는 운영 분과, 의료행위 분과, 약무 분과, 의료 기술 분과, 보건관리 분과를 둘 수 있도록 했고 각 분과는 위원장 포함 20인 이내로 구성된다. 약무분과가 의약품 처방·취급, 의료기기 사용 등의 심의를 담당하는 가운데 업무조정위는 노동자단체,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보건의료인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약사회는 복지부 등과의 협의를 이어가면서 투쟁본부 출범 등 대규모 집회도 개최할 방침이다. 지난 9월부터 3개월간 릴레이 시위에 나선 약사회는 한약사 교차 고용으로 인한 불법행위 근절, 면허 범위 내 의약품 조제·판매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한다는 계획 아래에 오는 4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전국 임원 결의대회를 진행한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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