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포인트]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 "떨리는 손으로 수술 못해…존중이 먼저"
"사무장병원·면대약국 방지법, 개설권 제한돼도 환자 안전 위해 필요"
"20년 뒤 수술할 의사 없어…형사처벌 구조에선 필수의료 해결 안돼"
- 구교운 기자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필수의료의 위기는 결국 의사를 향한 사회의 시선과 형사처벌 구조의 문제다. 형사처벌이 존재하는 한 필수의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떨리는 손으로는 수술을 할 수 없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회장은 2025년 11월 11일 서울시의사회 창립 110주년을 맞아 서울시의사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의사도 시민이고 국민"이라며 "경제적인 보상보다 의사를 향한 존중과 따뜻한 시선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서울시의사회의 110년을 "단순한 연대기적 축적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온 의사들의 책임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그는 뿌리인 한성의사회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문직의 존엄과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 왔다는 점을 언급하며 "의학의 가치를 시민의 권리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해왔고 그 정신이 지금 서울시의사회로 이어져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시의사회가 오늘 다시 되새겨야 할 정신으로 '시민과 함께 하는 전문성'을 꼽으며 "전문직으로서의 자율성과 공공성에 대한 책무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서울시의사회 등 서울시 4개 의약단체 제안으로 발의된 '사무장병원·면허대여약국 방지법안'에 대해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안은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새로 열 때 지역 의사회, 약사회 등 전문가 단체가 먼저 검토하는 절차를 신설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개설자가 지자체에 바로 신청할 수 있어 불법 구조가 초기에 걸러지기 어렵다. 새 법안은 의료기관의 개설이나 개설자 변경의 경우 그 내용을 지역 의사회에 먼저 제출하도록 했다. 약국의 경우에는 사전교육 이수 사실을 지역 약사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제출된 자료를 토대로 지역 의사회·약사회가 개설 자격의 적정성을 검토한 뒤 지방정부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절차가 신설되는 것이다.
황 회장은 "전문가 단체가 1차로 걸러주는 구조가 생기면 사무장병원·면대약국 같은 불법 의료기관이 애초에 생기지 않게 된다"며 "회원의 개설권을 일부 제한하더라도 환자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K-의료관광 붐이 높은 의료 기술과 가격 경쟁력에 있다고 꼽았다. 그는 "우리 의료의 경쟁력은 이미 세계적이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미국·유럽의 절반 수준 비용으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낸다"며 "미용 비급여 기준으로 보면 동남아 최상위권 수준이 한국 평균과 비슷하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필수의료 붕괴로 이같은 성과가 이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번 의정 사태로 필수의료는 확실히 망가져 버렸다"며 "길면 20년, 짧으면 10년 후부터는 머리가 깨지고 배가 아파도 환자를 위해 머리와 가슴을 열고 수술할 의사가 없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 문제는 10년 안에 해결하지 않으면 그때는 진짜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 환자가 사망해야 하는 처참한 현실이 올 것"이라며 "필수의료에 있어서는 국가가 과감하게 투자해야 하고 필수의료 의사들이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필수의료 붕괴의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로 형사처벌 구조를 짚었다. 그는 "형사 처벌을 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필수의료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아무리 많은 재정 투자를 하고 연봉을 10억, 20억 줘도 수술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형사 처벌을 받는다면 어렵고 위험한 수술을 피할 수밖에 없다. 떨리는 손으로는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의사제와 지역·공공의료 대책에 대해서도 황 회장은 조건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응급실에 의사를 강제로 배치하고, 없으면 병원장을 처벌한다고 해서 의사가 응급실을 지키고 지역에 내려가지는 않는다"며 "이건 의사 개인이나 단체 문제가 아니라 배치의 문제이고 국가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했다.
의사 수 전체를 늘리기보다 현재 인력을 더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수도권·대형병원에 과도하게 집중된 인력을 분산하고 지역 중소병원과 필수과에 인력이 돌아 갈수 있도록 근무환경·보상·근무 방식 등을 조정하고,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지역 수련기관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황 회장은 제시했다.
그러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재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황 회장은 강조했다. 그는 "왜 공공의 영역을 민간에게 맡기고 의사들에게 책임지라고 하느냐"며 "국고 지원을 명시하고 있는 건강 보험법에 명시되어 있는 규정만 제대로 지켜도 지금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정부가 스스로 20여년 가까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을 아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지금도 국민들은 막중한 건보료 부담에 등골이 휘고 있다. 정부의 정책 변화만으로도 국민의 건보료 인상 없이 지금의 지역·필수·공공 의료의 모든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실제 생활 기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여건이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중소병원의 낮은 수가, 필수과 전공의 수련의 어려움, 지방 병원들의 인력 고용 여력 부족 등과 직결돼 있으며,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가족 분리 부담 등 사회적인 요소들로 인해 현실에서는 자발적인 이동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취지다.
황 회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존중'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의사도 시민이고 국민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서 가장 큰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간다. 경제적인 보상보다 서로 존중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우리 의사를 사람으로, 시민으로 봐주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지금의 의료 문제는 절반 이상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의사는 사람들을 치료할 때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들"이라며 "떨리는 손으로 수술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필수의료를 지키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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