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남녀 모두 무료 HPV 접종…현장, 여전히 아쉽단 이유는

9가 등 고품질 백신으로 확대해야…OECD 가입국 상당수 적용 중
전문가들 "암 예방 더 효과" 공감대 이뤄도 정부 '예산' 어려움

내년에 2014년생(만 12세) 남아가 HPV(사람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NIP)에 따라 무료로 맞을 수 있게 된다. ⓒ News1 DB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내년에 2014년생(만 12세) 남아가 HPV(사람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NIP)에 따라 무료로 맞을 수 있게 된다. 4가지 고위험 HPV 감염을 막아주는 4가 백신을 활용해 내년 2~3분기 진행될 예정인데,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아쉽다"는 반응이 터져 나오고 있다.

18일 질병관리청과 의료계에 따르면 주로 성 접촉 등으로 감염되는 HPV는 여성의 자궁경부암뿐만 아니라 남성에게 항문암, 두경부암, 음경암 등 다양한 암과 생식기 사마귀를 유발한다. 현재 12~17세 여아와 18~26세 저소득층 여성에게만 무료 접종돼 왔다.

그러다 지난 8월 정부는 앞으로 12세 남아를 HPV NIP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 HPV 백신의 NIP 예산도 기존 210억 원에서 303억 원으로 93억 원 늘어났다. HPV 남아 접종 확대는 지속해서 정부 국정과제에 반영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HPV 백신 NIP 도입 10년 만에 남녀 모두에게 접종이 이뤄진다. 하지만 현장 전문가들은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평가하면서도 HPV 접종 확대가 실제 효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고품질 백신으로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주요 해외 국가는 남녀 모두에게 9가 HPV 백신 접종을 지원하고 있다. 9가 백신은 HPV 6, 11, 16, 18, 31, 33, 45, 52, 58형 등 9가지 바이러스를 예방해 4가 백신보다 예방 범위가 넓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8개국 중 29개국이 남녀 모두에게 9가 백신 접종을 지원한다.

9가 백신이 자궁경부암, 질암, 외음부암, 항문암, 생식기 사마귀 등 HPV 관련 암과 질환을 최대 96.7% 예방하며 4가 백신 대비 20% 이상 추가 예방 효과가 있다고 입증된 데 따른 조치다. 한국보다 늦게 무료화한 대만도 이달부터 남녀 모두에게 9가 백신을 지원하며 앞서갔다.

이와 관련해, 지난 15일 국회 백혜련·김남희·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대한부인종양학회·대한두경부외과학회가 주관한 'HPV 국가접종 대상 확대와 고품질 백신 전환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9가 백신의 NIP 적용을 촉구하는 성토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민경진 고려대 안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해 대한부인종양학회는 기존 2가 혹은 4가 접종자에게도 9가 접종을 권고했다. 아시아에서 흔한 HPV 52형과 58형은 9가로만 예방할 수 있다. 전 세계 자궁경부암의 약 90%가 9가지 HPV 유형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민경진 교수는 "따라서 한국에서도 최대 예방 효과를 위해 남녀 모두에게 9가 백신을 NIP에 포함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국민이 예방을 통해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의 책무"라고 부연했다.

발제자로 나선 이세영 중앙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두경부암 현황을 근거로 남성 접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020년 국내 두경부암 약 6400건 중 4800건이 남성에서 발생한 바 있다면서 "남성이 여성보다 HPV 감염에 취약한 만큼 접종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녀 모두에서 약 80% 접종률을 달성해야 HPV 퇴치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접종률이 낮거나 예방효과 지속 기간이 짧을수록 남녀 동시 접종에서 얻을 수 있는 추가 효과가 크며, 남아 접종을 포함할 때 10~30년 내 유병률 감소가 뚜렷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 News1 DB

이세영 교수는 "구강암의 경우 약 3분의 1이 HPV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됐지만, 국내 HPV 백신의 적응증에는 아직 구인두암 예방이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9가 백신으로 전환해야만 HPV 관련 암 예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토론에 참여한 김수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원 연구교수는 형평성 문제를 짚었다. 김 교수는 "2020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 학생 중에는 접종 경험자가 많았으나 강북권 학생에게서는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부모의 경제력과 교육 수준이 청소년 성 건강을 갈라놓고 있다. 4가 백신 지원이 시행돼도 일부는 비용을 들여 9가를 접종하려 할 것"이라며 "백신 선택권이 소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명백한 건강 형평성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남녀 모두에서 약 80% 접종률을 달성해야 HPV 퇴치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접종률이 낮거나 예방효과 지속 기간이 짧을수록 남녀 동시 접종에서 얻을 수 있는 추가 효과가 크며, 남아 접종을 포함할 때 10~30년 내 유병률 감소가 뚜렷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나 신중한 반응을 보인다. 예산 추가 확대에 대한 어려움으로 풀이된다. 질병청은 추가 확대에 예산과 백신 수급 여건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서, 단계적으로 지원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