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명 중 1명 희귀병…국내 첫 치료제 '헌터라제'의 끝없는 도전[약전약후]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개발…기존 치료제보다 가격 부담 낮춰
정맥주사 한계 넘어 '뇌까지 전달'…ICV로 중증 환자 치료 새 길

GC녹십자의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 (GC녹십자 제공)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태어날 때부터 몸속 효소 하나가 부족해 온몸의 장기가 서서히 손상되는 병이 있다. 남자아이 10만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 '헌터증후군'이다.

'2형 뮤코다당증'으로도 불리는 이 질환은 몸속에서 특정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해 발생한다. 분해되지 못한 물질이 몸 곳곳에 계속 쌓이면서 얼굴 모양 변화와 성장 지연, 골격 이상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중증 환자의 경우 뇌와 중추신경계까지 손상돼 인지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치료의 핵심은 몸에 부족한 효소를 외부에서 넣어주는 '효소대체요법'(ERT)이다. 환자에게 부족한 효소를 주기적으로 투여해 몸속에 해로운 물질이 쌓이는 것을 줄이는 방식이다.

과거 국내 헌터증후군 환자들은 해외 제품에만 의존해야 했다. 환자 수가 적은 희귀질환 특성상 치료제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2012년 전세계에서 두번째 헌터증후군 치료제가 국내에서 나왔다. 바로 GC녹십자가 개발한 '헌터라제'다.

헌터라제는 환자에게 부족한 'IDS' 효소를 정맥주사로 보충하는 치료제다. IDS는 몸속 특정 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효소를 보충해 물질이 몸에 쌓이는 것을 줄이고 증상을 개선한다.

헌터라제는 기존 수입 치료제보다 약 20% 낮은 가격으로 공급돼 환자의 치료 부담을 낮췄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정맥주사 치료법으로는 약물이 뇌까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었다. 뇌에는 외부 물질의 침입을 막는 '뇌혈관장벽'(BBB)이 있어 정맥으로 투여된 치료제가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헌터증후군 환자의 약 70%는 뇌와 중추신경계 손상을 동반하는 중증 환자기 때문에 기존 치료만으로는 인지기능 저하 등의 신경계 증상을 치료하기 쉽지 않았다.

이에 GC녹십자는 치료 약물을 환자의 뇌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의 '헌터라제ICV'를 개발했다. 환자의 머리에 작은 장치를 삽입하고 이를 통해 약물을 뇌실에 직접 투여함으로써 약물이 중추신경계까지 전달되도록 만든 것이다.

일본에서 진행한 임상에서는 중추신경 손상에 관여하는 '헤파란 황산'이 많이 감소했다. 5년간 장기 추적한 결과에서도 낮은 수준이 유지됐고, 인지기능 저하가 늦춰지거나 개선되는 효과가 관찰됐다.

헌터라제ICV는 지난 2021년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뇌실에 직접 투여하는 중증 헌터증후군 치료제로 인정받았으며, 이후 러시아에서도 허가를 받아 판매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같은해 8월 국내 품목허가 신청이 이뤄졌다.

GC녹십자는 올해 2월 페루에 헌터라제ICV 품목허가를 신청했으며, 앞으로 동남아시아와 중동, 중남미 등도 단계적으로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헌터라제의 과제는 더 많은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헌터증후군은 진행될수록 여러 장기의 손상이 커질 수 있어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에서는 전국 17개 권역별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중심으로 유전자 검사와 전문 진료가 제공되고 있다. 다만 헌터증후군은 아직 리소좀 축적병 신생아 선별검사의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환자를 더 일찍 발견하고 치료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4년 전, 국산 치료제로 첫발을 뗀 헌터라제는 이제 치료 영역을 뇌와 중추신경계까지 넓히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를 넘어 해외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환자 수가 적어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던 희귀질환 분야에서 헌터라제가 더 많은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