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식 바꿀까요?" 개정상법에 제약·바이오 '상호방위조약' 러시
'자사주 의무 소각' 상법 개정완 본회의 통과 전후로 주식 교환 '활발'
법시행 직전 '백기사'에 지분 넘겨 경영권 강화…업계 "방어수단 자사주 뿐"
- 서상혁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한 개정 상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자기주식을 맞교환하는 중견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는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우호적 기업(백기사)에 넘기는 우회 전략으로 풀이된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약품은 지난달 27일 신풍제약, 삼일제약과 각각 295억 원, 16억 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교환했다. 현대약품은 같은 날 대화제약과도 108억 원 규모의 주식을 맞바꿨다. 각 사는 이번 맞교환에 대해 "전략적 제휴" "지속적 사업협력관계 구축"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자사주 맞교환이 지난달 25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을 우회하려는 시도로 본다. 법안이 본격 시행되기 전에 자사주로 '경영권 방어' 카드를 얻겠다는 전략이다.
자사주는 대주주에게 있어 만능열쇠와 같다. 주가 흐름이 부진할 땐 자사주를 매입·소각해 반등 모멘텀을 만들 수 있으며, 인수·합병 과정에서 인수 대금을 자사주로 치를 수 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경영권 방어'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시중 유통 주식 수가 줄어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상승한다.
특히 보유한 자사주를 '백기사(우호세력)'에게 넘길 경우 대주주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단순 매각이나 맞교환을 통해 제 3자에게 넘어갈 경우 부활하는 특징을 가진다.
가령 유통주식 100주·최대주주 보유 주식 30주인 기업이 시장에서 20주의 자사주를 매입했을 경우, 최대주주의 의결권 기준 지분율은 30%에서 37.5%로 상승한다. 여기에서 소각하지 않고 백기사에게 20주를 넘긴다면 실질적인 지분율은 50%가 된다.
법안의 취지대로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보다 우호 업체와 맞교환해 상호주를 형성하는 편이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는 더 유리한 셈이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자사주 맞교환 흐름은 중견사를 중심으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3차 상법 개정안이 발의된 이후인 지난해 11월 삼진제약과 일성아이에스는 약 79억 원의 자사주를 맞교환했다. 국제약품과 일동홀딩스도 12월 약 34억 원어치의 자사주를 교환했다.
광동제약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대웅, 휴메딕스와 각각 138억 원, 139억 원어치의 자사주를 맞바꿨다. 이 밖에도 종근당 등은 자사주를 담보로 한 교환사채(EB)를 발행하기도 했다.
반면 대형사로 분류되는 셀트리온과 유한양행은 대규모 자사주 소각에 나설 예정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형사들과 다르게 지배구조가 완벽하게 자리 잡지 않은 중견사들은 자사주를 소각해 주가를 올리는 것보다,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자사주 맞교환은 개정 상법 공포 시점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상속·증여 관련 현안이 있는 기업일수록 자사주 처분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행 세법상 주식 증여·상속에 따른 세금은 시가를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어야만 제3자에 자사주 처분이 가능해지는 만큼, 지금과 같은 주식 맞교환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맞교환이 상법 개정 취지인 '주주가치 제고'와 상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주의 몫인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변호사는 "돈 많은 외국인들이 지배력을 취득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실체가 없으며, 그렇더라도 회삿돈이 들어간 자기주식으로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반면 업계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아직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 제도가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자사주는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는 것이다.
특히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경우 긴 호흡이 필요한 연구·개발에 주력하는 만큼, 대주주가 중심을 잡고 운영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부 투자 의존도가 높은 제약·바이오 업계 특성상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업체들이 있는데, 이들의 경영권이 흔들리면 신약 개발 등 장기 사업도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회원사 179개사 중 87개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40%를 밑도는 업체는 49개 사로 집계됐다. 이 중 30% 미만 업체는 24개 사였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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