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MCI는 '복합질환'…콜린 제제 효과 평가 방식 재고론 부상

경도인지장애, 원인·진행 복합적…"약효 단일 평가 어려워"
"실제 처방·현장 데이터 함께 봐야…20년 처방 반영 필요"

한 환자가 서울에 있는 상급종합병원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뉴스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치매 예방약으로 널리 알려진 '콜린알포세레이트'(콜린 제제)에 대한 임상재평가와 관련해 의료계 일각에서 현행 평가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치매와 경도인지장애(MCI)는 원인이 복합적이고 환자 개별 편차가 큰 질환인 만큼 '단일 임상' 결과만으로 약효를 재단하는 것은 의학적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제학회와 국내 주요 대학병원의 연구를 통해 콜린 제제가 뇌 위축을 억제하고 인지 저하를 방어한다는 구체적인 근거들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단일 임상 중심의 획일적 평가 체계를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임상재평가 '단일 임상' 진행…판단 근거 불충분 우려

3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콜린 제제와 관련해 알츠하이머성 치매 적응증과 MCI 적응증에 대해 각각 임상재평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결과 제출 기한은 알츠하이머 적응증 2027년 12월, MCI 적응증 2027년 3월이다.

임상재평가는 이미 판매 중인 약이 효능이 있는지 다시 임상 연구를 거쳐 증명하라는 식약처의 조치다. 제약사는 의약품을 개발할 때와 유사하게 환자를 모집하고 투약군과 가짜약군(위약군)으로 나눠 약을 투약한 후 약효가 있다는 데이터를 식약처에 제출해야 한다.

의료계 일각에서 이 같은 단일 임상만으로는 콜린 제제의 약효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상 현장의 환자들은 알츠하이머 병리뿐만 아니라 혈관성 변화, 염증, 대사 요인 등이 혼재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임상시험은 특정 조건의 환자만을 선별하므로, 실제 환자군이 겪는 다양한 병리적 특성을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다. 영상 진단 결과와 실제 인지 기능 간의 불일치 현상도 빈번하다.

평가 도구의 한계도 지적된다. 현재 사용되는 인지 기능 검사들은 수개월 내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기에 민감도가 부족하다. 평가자의 주관이나 환자의 당일 컨디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실제로는 약물에 의한 유의미한 개선이 있어도 통계적 수치로는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장기 추적관찰과 진단 난이도가 어렵다는 점도 우려된다. 치매는 수년에 걸쳐 진행되는 만성 질환이나, 임상시험은 고령 환자의 체력적 부담과 높은 중도 탈락률로 인해 통상 18개월 내외로 종료된다. 이는 약효를 충분히 검증하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다.

MCI 단계는 정상 노화나 우울증, 수면 장애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임상시험 대상군에 약효 평가가 부적절한 환자가 포함될 경우, 전체 연구 결과의 신뢰도를 희석할 위험이 있다.

콜린 제제 잇따른 연구 성과…'뇌 위축 억제·치매 전환 지연'

단일 임상평가의 한계를 고려한 장기 관찰 연구와 최신 해외 연구에서는 콜린 제제의 일관된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이탈리아 카메리노 대학교의 프란체스코 아멘타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12개월 장기 추적 관찰 결과 콜린 제제 투여군은 위약군 대비 해마·편도체·대뇌피질의 위축 속도가 유의하게 낮았다. 또 인지 기능과 일상생활 수행능력 역시 더 안정적으로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콜린 제제가 초기 단계에서 뇌 구조의 퇴행을 늦추는 데 기여한다고 분석했다.

앞서 2022년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은 MCI 환자에서 콜린 복용 시 기억력과 주의력 저하가 완만해짐을 확인한 바 있다.

올해 1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됐다. 해당 연구 분석 결과, 콜린 제제 복용군은 비복용군 대비 알츠하이머성 치매로의 전환 위험이 약 10%, 혈관성 치매 전환 위험은 약 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혈관성 위험 인자를 가진 환자군에서 인지 보존 효과가 더욱 뚜렷했다고 설명했다.

한 대학병원 신경과 전문의는 “치매와 MCI는 단일 원인이 아닌 다양한 병리가 복합적으로 얽힌 질환”이라며 “이러한 특성을 배제한 채 단기 임상시험의 성패만으로 약제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실제 진료 현장의 환자 반응과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