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1회 피하투여, 희귀질환 치료 새 희망 '피아스카이'[약전약후]
로슈, '리사이클링 항체' 기술 적용 자가주사 가능
임상서 기존 약 대비 비열등성 입증…게임체인저 기대
- 황진중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희귀혈액질환인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 치료제 시장에 새로운 희망이 등장했다. 그동안 정맥주사(IV) 제제 중심으로 치료가 진행됐지만 로슈의 차세대 PNH 치료제 '피아스카이'(성분명 크로발리맙)이 허가되면서 환자 편의성을 높이는 방식의 치료가 가능해졌다.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은 체내 보체 시스템의 일부인 C5 단백질이 적혈구를 외부 침입자로 오인해 공격하고 파괴(용혈)하는 희귀 유전성 혈액 질환이다. 이름처럼 자는 동안 용혈이 심해져 아침에 콜라색 소변을 보는 것이 특징적 증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소변 색이 변하는 문제가 아니다. 적혈구 파괴로 인한 빈혈, 피로감은 물론이고, 파괴된 혈구 찌꺼기가 혈관을 막는 혈전증이 발생할 경우 급사에 이를 수도 있다.
치료하지 않을 경우 진단 후 5~6년 내 사망률이 35%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따라서 보체 단백질(C5)의 활성을 억제해 적혈구 파괴를 막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PNH 치료는 대개 아스트라제네카(알렉시온)의 '솔리리스'(성분명 에쿨리주맙)와 '울토미리스'(성분명 라불리주맙)가 이끌어왔다. 바이오시밀러 삼성바이오에피스 '에피스클리' 출시로 환자 접근성을 높인 상황이었다.
솔리리스는 C5 억제제로 PNH 환자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하지만 2주 간격으로 병원을 방문해 정맥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점이 한계다. 이후 등장한 울토미리스는 반감기를 늘려 투여 간격을 8주로 연장하며 편의성을 개선했다.
두 약제 모두 의료진이 있는 병원에서 30분에서 2시간가량 정맥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환자들의 일상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혈관이 약해 주사를 맞기 힘든 환자들에게는 잦은 정맥 투여에 한계가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후발주자인 로슈는 투여 경로와 용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리사이클링 항체'(Recycling Antibody) 기술을 접목했다. 이는 피아스카이의 핵심 경쟁력이다.
일반적인 항체 치료제는 타깃 단백질인 C5와 결합해 작용 후 분해돼 사라진다. 반면, 피아스카이는 혈액 내 중성 pH 환경에서는 C5와 강하게 결합해 세포 내로 들어간 뒤 세포 내 산성 pH 환경에서는 C5와 분리되도록 설계됐다.
분리된 C5는 분해되고, 피아스카이 항체는 다시 혈액으로 방출되어 다른 C5를 찾아 나선다. 이 재활용 기전 덕분에 피아스카이는 적은 용량으로 지속적인 C5 억제 효과를 낼 수 있다.
피아스카이는 이 같은 기전에 따라 약물 용량을 줄임으로써 대용량 정맥주사가 아닌 소용량 피하주사(SC) 개발이 가능하다. 피아스카이는 4주에 1회, 환자가 직접 복부나 허벅지에 주사할 수 있다. 병원 방문 횟수를 획기적으로 줄여 환자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편의성이 좋아졌다고 해서 효과가 떨어지면 의미가 없다. 피아스카이는 글로벌 임상 3상(COMMODORE 2)을 통해 기존 표준 치료제인 에쿨리주맙(솔리리스) 대비 비열등성을 입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혈회피 비율은 피아스카이 투여군 65.7%, 에쿨리주맙 투여군 68.1%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용혈 조절 비율 역시 피아스카이군 79.3%, 대조군 79.0%로 동등한 수준의 효능을 보였다.
기존 C5 억제제로 치료받던 환자가 피아스카이로 전환한 경우에도 효능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안전성 프로파일 역시 기존 치료제와 유사했다.
피아스카이의 등장은 아스트라제네카가 사실상 독점해 온 PNH 치료제 시장 경쟁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다만 건강보험 급여라는 산을 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고가 희귀질환 치료제인 만큼 급여 적용 여부가 환자 접근성의 열쇠를 쥐고 있다. 기존 치료제들이 이미 급여권에 진입해 있는 상황에서 피아스카이가 환자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실제 처방 현장에서 보험급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j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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