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1호 비만 신약' 화려한 부활…한미약품 '에페글레나타이드' 허가 추진

"혁신제품신속심사 품목 지정 20일 만에 신청서 제출"
국내 3상서 평균 10% 체중 감량…최대 30%까지 줄어

한미약품 연구원들이 의약품 개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한미약품 제공)/뉴스1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한미약품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가 개발 여정을 마치고 상용화 최종 관문에 섰다.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로부터 권리가 반환된 지 5년 만에 위기를 기회로 바꾼 '한국형 비만 신약'의 탄생이 임박했다는 평가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자동주사기'(프로젝트명 HM11260C)의 품목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번 허가 신청은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지난달 27일 식약처로부터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대상으로 지정된 지 불과 20일 만에 이뤄졌다.

GIFT는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질환이나 혁신성이 뛰어난 의약품의 심사 기간을 기존 120일에서 90일로 단축하는 제도다. 한미약품은 임상 데이터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해당 절차를 밟았다. 이르면 2026년 하반기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약 대비 심혈관 위험 감소를 낮춘 한미약품 '에페글레나타이드'(빨간색 그래프).(한미약품 제공)/뉴스1
미운 오리서 '백조'로…기술반환이 남긴 유산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국내 제약산업 연구개발(R&D) 역사를 보여준다. 이 약물은 지난 2015년 한미약품이 사노피에 최대 5조 원 규모로 기술 수출한 '퀀텀 프로젝트'의 핵심 파이프라인이었다.

그러나 2020년 5월 사노피가 경영 전략 변경 등을 이유로 해당 후보물질에 대한 권리를 반환하며 개발 중단 위기를 맞았다. 대개 기술이 반환된 신약 후보물질은 시장 가치를 상실한 것으로 간주해 사장되는 수순을 밟는다.

그러나 반환 과정에서 확보된 글로벌 임상 데이터가 역설적으로 에페글레나타이드의 부활을 이끌었다.

사노피가 주도한 대규모 글로벌 임상 3상(임상명 AMPLITUDE-O) 결과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제2형 당뇨병 환자 4076명을 대상으로 위약 대비 주요 심혈관계 사건(MACE) 발생 위험을 27%, 신장 질환 발생 위험을 32% 낮췄다.

이 결과는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등재되며 학술 가치를 인정받았다.

최근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심혈관·대사 질환 예방 효과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이미 글로벌 수준의 안전성과 유효성 데이터를 확보한 셈이다.

한미약품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당뇨병 치료제였던 개발 방향을 비만 치료제로 선회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한국인 최적화 임상…'안전성·효능' 두 마리 토끼 잡아

이번 허가 신청의 핵심 근거가 된 국내 임상 3상시험 결과는 '한국형 비만약'이라는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경쟁력을 보여준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국내 비만 성인 4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에서 1차 유효성 평가변수를 충족했다.

에페글레나타이드 투여군은 평균 9.75%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 일부 고도비만 환자군에서는 최대 30%의 감량 효과가 확인됐다. 이는 경쟁약물이 서양인 고도비만 환자를 기준으로 개발된 것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의 체형과 체질에 맞춰 최적화된 용량과 효능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했다. GLP-1 계열 약물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구토, 설사 등 위장관계 부작용이 기존 약물 대비 양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환자의 복약 순응도를 높여 장기적인 체중 관리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약품이 비만 치료 분야 경쟁력 확보를 위해 'H.O.P'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한미약품 제공)/뉴스1
'게임 체인저' 디지털·복합제 확장 전략 가속

업계는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출시될 경우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은 외국산 비만 치료제가 장악하고 있으나, 전 세계적인 품귀 현상에 따른 일부 공급 불안정과 높은 가격 등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자체 생산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했다. 수입 약물 대비 합리적인 가격 정책과 원활한 물량 공급이 가능해지면 시장 점유율을 높게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은 약물 출시를 넘어 '라이프 사이클 매니지먼트'(LCM)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디지털 치료제(DTx) 개발 등을 통해 약물 투여 환자에게 운동·생활 습관 교정을 돕는 웨어러블 의료기기와 결합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 임상시험계획(IND)은 2026년 1분기 신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적응증 확장에도 속도를 낸다. 현재 SGLT-2 억제제·메트포르민과의 병용요법을 통해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의 확장을 위한 임상 3상을 추진 중이다. 2028년 허가가 목표다. 이를 통해 비만뿐만 아니라 당뇨, 심혈관, 신장 질환을 아우르는 '통합 대사질환 치료제'로 자리매김한다는 구상이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에페글레나타이드 허가 시 글로벌 빅파마들이 독식하던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국산 약물이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안정적인 국내 생산망을 기반으로 한 가격 경쟁력과 한국인 대상 임상 데이터는 강력한 시장 침투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