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EGFR 폐암 정복전 전면에…'타그리소' 독주 흔드나

렉라자·VRN11·JIN-A02 등 한국 신약, EGFR 폐암 미해결 과제 정면 공략
병용요법·4세대 파이프라인 부상…한국 기업 존재감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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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장도민 기자 = K-바이오가 글로벌 폐암 치료 시장에서 수년간 강세를 보여온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의 독주 체제가 흔들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 폐암 치료의 핵심 난제인 내성, 뇌전이, c-MET 활성화 등을 정면으로 겨냥한 신약 후보를 잇달아 내놓은 영향이다.

EGFR은 우리 몸 세포가 자랄 때 켜지는 일종의 '성장 스위치' 같은 단백질이다. 여기에 변이가 생기면 스위치가 계속 켜진 상태가 되어 세포 증식이 멈추지 않고, 폐암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EGFR 폐암 치료제는 이 고장 난 스위치를 차단해 암의 진행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렉라자, 타그리소와 '정면 승부'…1차 치료 병용은 美 가이드라인 채택

국산 EGFR 폐암 신약 중 글로벌 무대에서 가장 먼저 '직접 경쟁 구도'를 만든 약은 유한양행·오스코텍이 개발한 레이저티닙(렉라자)이다.

25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세계폐암학회(WCLC) 2024에서 발표된 대규모 3상 시험(MARIPOSA)에서 렉라자 단독요법은 타그리소와 비교해 주요 지표가 대부분 대등한 수준을 보였다. 이는 국산 신약이 글로벌 표준 치료제와 어깨를 나란히 한 첫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 주목받은 부분은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이다. EGFR·세포 성장 신호 수용체(MET) 이중항체인 리브리반트와 함께 투여했을 때 타그리소 단독보다 더 우수한 경향을 보였다는 분석이 이어졌고, 결국 미국 종합암네트워크(NCCN)는 EGFR 변이 폐암의 1차 치료 공식옵션으로 이 병용요법을 등재했다.

국산 항암제가 미국의 공식 진료지침 1차 치료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VRN11·JIN-A02·바바메킵내성·c-MET·뇌전이 공략으로 존재감

한국 기업들은 렉라자 이후 단계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난제는 타그리소 같은 3세대 EGFR 치료제를 사용한 뒤 나타나는 'C797S 내성'이다. 이 내성이 생기면 기존 치료제가 잘 듣지 않아 후속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다.

보로노이의 'VRN11'은 이 내성 변이를 직접 겨냥한 4세대 EGFR 치료제로, 올해 AACR-NCI-EORTC 학회에서 공개된 초기 임상 결과가 특히 주목받았다. C797S 변이를 가진 환자 4명 중 3명에서 종양이 줄어드는 부분관해가 나타났고, 뇌전이나 척수 주변으로 암이 퍼진 환자에서도 병의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뇌전이·연수막 전이는 EGFR 폐암 환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어려운 합병증인데, VRN11은 이 영역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여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제이인츠바이오의 JIN-A02 역시 3세대 치료제 이후 생기는 내성을 겨냥한 후보로, 최근 주목받는 'MET 표적 ADC'(항체-약물 접합체)와의 병용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 국내를 포함해 글로벌에서도 이 병용 전략을 자체 개발하는 사례는 많지 않아, 기술적 차별화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c-MET 변이를 직접 공략하는 시도도 있다. 에이비온의 바바메킵(ABN401)은 간세포성장인자 수용체(c-MET) 엑손14 결손 변이를 가진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에서 의미 있는 반응률을 보이며 후속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EGFR 변이, 내성, c-MET 변이 등 서로 다른 난제를 겨냥한 한국 기업들의 후보물질이 동시에 발전하면서, EGFR 폐암 치료 영역에서 K-바이오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호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레이저티닙은 J&J의 주력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기술수출 모범사례"라고 평가했다. 또 "K-바이오 신약이 글로벌 블록버스터(연매출 10억달러 이상) 의약품에 등극하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분석했다.

jd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