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돌보는 것이 건강수명을 지키는 첫걸음이다[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초고령사회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4년 기준 83.7세이지만 65세 이상 고령자의 최빈사망연령은 약 92세에 이른다. 오래 사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시대가 됐지만 많은 고령자는 이전보다 더 큰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건강에 대한 걱정, 경제적 부담, 배우자와 친구의 죽음, 사회적 고립, 치매로 인해 자녀에게 짐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노년의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 전반을 흔드는 현실이자 실존의 문제다.
고령자가 작은 증상에도 심각한 질병을 의심하고, 검사 결과가 정상이더라도 안심하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병원을 찾는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건강염려증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질병불안장애(Illness Anxiety Disorder) 또는 신체증상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로 진단한다. 건강에 대한 과도한 불안은 불필요한 검사와 진료를 반복하게 만들어 의료의 과잉 이용을 초래할 뿐 아니라 검사와 치료 과정에서 없던 병도 만드는 의원성 질환(iatrogenic disease)의 위험도 높인다.
불안은 없애야 할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위해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중요한 방어기전이다. 진화 과정에서 낯선 소리나 맹수의 흔적을 보고 불안을 느끼지 못했다면 인간은 위험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안은 뇌가 잠재적인 위험을 예측하고 몸을 대비시키는 경보 시스템이다. 불안을 느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며, 집중력이 높아진다. 이는 모두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적응 반응이다.
문제는 이 경보 시스템이 실제 생명의 위협이 아닌 경제적 걱정, 건강에 대한 염려, 인간관계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도 반복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특히 고령자에게서는 질병, 배우자의 사별, 사회적 고립, 신체 기능 저하, 치매에 대한 두려움 등이 불안을 지속시키면서 일시적인 생존 반응이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태로 변하기 쉽다. 만성적인 불안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키고, 혈압과 혈당을 높이며, 면역 기능을 떨어뜨리고 몸속의 만성 염증을 촉진한다. 만성 불안은 뇌심혈관질환, 치매, 근감소증, 수면장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령자의 불안은 단순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불안하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식욕이 떨어지거나 반대로 과식하며, 외출과 운동을 피하게 된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서 사회적 관계도 점차 줄어든다. 이러한 변화는 근력 감소와 영양 불균형을 가져오고, 결국 구강노쇠와 전신노쇠를 촉진해 건강수명을 단축한다.
불안, 불면, 우울은 서로 독립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 불안이 지속되면 뇌는 계속해서 위험을 경계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자주 깨게 된다. 이렇게 수면이 부족해지면 감정을 조절하는 뇌 기능이 떨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늘어나 우울감이 깊어진다. 반대로 우울은 의욕을 떨어뜨리고 활동량을 줄여 불안을 더욱 키우며, 다시 불면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특히 고령자에게서는 이러한 악순환이 신체 기능 저하와 근감소증, 낙상, 인지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불안이 지속되면 입 마름이 심해지고 침 분비가 감소하면서 구강 염증이 증가한다. 그 결과 충치와 치주질환이 악화하고, 구강의 만성 염증은 전신으로 확산해 몸속 염증 반응을 더욱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특히 삼킴 기능이 저하된 고령자에게는 이러한 구강 건강 악화가 흡인성 폐렴의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 염증은 단순한 질병의 결과가 아니라 노화를 강화하는 중요 기전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구강 염증을 줄이는 일은 치아를 지키는 것을 넘어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은 불안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다. 동네를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하고 기분이 안정될 수 있다. 또한 가까운 체력인증센터에서 자신의 체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적절한 운동 처방을 받는 것도 건강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충분한 수면과 균형 잡힌 식사, 올바른 구강 관리, 가족과 이웃과의 대화, 취미 활동으로도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지역사회 모임이나 자원봉사, 평생교육 프로그램과 같은 사회적 활동은 고령자의 불안을 줄이고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헬스 기술을 활용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가족이나 의료진과 소통하는 서비스도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고 있다.
준비된 노후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몸의 건강을 돌보는 것만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바꿀 수 없는 일을 걱정하기보다 바꿀 수 있는 오늘의 행동에 집중하는 삶, 그리고 오늘 하루 마음이 편안했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건강한 노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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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필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뇌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한 학자이자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으로 의료계와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의학과 치의학의 경계, 장애인 치과, 지역사회 구강돌봄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황금 노후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노후, 슬기로운 노후 준비를 위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