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오래 살 것인가?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고령자에게는 근거 있는 장수법만큼이나 더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어떻게 더 오래 버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끝까지 나답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거동이 불편하고 지병이 있어도 놀랄 만큼 활기차고 평온한 고령자가 있는가 하면,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이룬 것도 많지만 은퇴 직후 삶의 의욕을 잃고 빠르게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나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답, 곧 삶의 가치와 의미가 그 차이를 만든다.
가치와 의미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가치는 무엇을 옳고 소중하게 여기며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를 정하는 삶의 방향과 기준이다. 반면 의미는 내가 왜 살아가는지, 왜 이 삶을 계속 살아갈 만한지에 대한 존재적 이유와 목적감에 가깝다. "나는 가족을 돌보는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가치이고, "그래서 내 삶은 계속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것은 의미다. 가치는 행동을 선택하게 하는 기준이고, 의미는 그 삶을 견디고 이어가게 하는 힘이다.
고령자에게 중요한 것은 주민등록상의 연령이 아니라 기능 연령이다. 같은 여든 살이라도 누구는 스스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사회활동을 이어가지만, 누구는 근감소와 균형장애, 인지 저하로 기능이 크게 떨어진다. 결국 고령자를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몇 살인가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기능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다. 고령자의 존엄은 단순한 보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노화의 과정에서 남아 있는 기능을 최대한 살려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인간으로서의 자율성과 선택권을 끝까지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고령자 보건복지정책도 단순히 오래 살게 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건의료, 요양과 돌봄, 그리고 사회안전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령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참여하고, 배우고,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조금 불편하고 느리더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며 관계를 이어갈 때, 고령자는 더 오래 나다움을 유지한다.
하버드대 심리학자 엘렌 랭어의 이른바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 실험이 오래 회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연구를 사람을 젊게 만드는 과학적 증거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흥미로운 것은 노화를 대하는 태도와 환경이 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는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 돌보는 사람, 활동하는 사람은 주변 환경을 걷고, 읽고, 대화하고, 취미를 이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꾼다. 결국 젊게 산다는 것은 젊음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라 변화한 몸에 맞는 삶의 방식을 다시 찾는 일이다.
최근 연구들은 노화를 바라보는 내부감각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을 이미 쇠퇴한 존재로 규정할수록 몸은 더 빨리 노쇠하고,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을수록 삶의 태도와 기능은 달라진다. 결국 사람을 늙게 만드는 것은 세월만이 아니라 나이를 탓하는 부정적 내부감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아직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낄 때 더 건강해진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 젊은 세대에게 삶의 경험을 들려주는 일, 이웃과 안부를 나누는 일, 작은 화분을 돌보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모두가 삶의 의미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크게 이뤘는가가 아니라 내가 아직도 누군가와 연결돼 있고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오늘을 살아갈 이유를 스스로 느끼는 데 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삶의 끝을 향해 마지못해 버티는 일이 아니라 느려진 몸에 맞게 일상을 새로 조율하고, 좁아진 관계를 더 깊고 따뜻하게 가꾸며, 줄어든 삶의 에너지 속에서 더욱 중요한 것에 집중해 가는 과정이다. 결국 준비된 노후란 오래 버티는 삶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낼 이유가 있는 삶이다. 내가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며, 내 삶이 여전히 가치 있다고 느끼는 삶이다. 어떻게 오래 살 것인가. 노화 과정에서 남아 있는 기능을 유지하고, 관계를 잇고, 가치를 만들며, 삶의 의미를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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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필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뇌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한 학자이며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으로 의료계와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의학과 치의학의 경계, 장애인 치과, 지역사회 구강돌봄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황금 노후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노후, 슬기로운 노후 준비를 위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