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편집자주 ...필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뇌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한 학자이며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으로 의료계와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의학과 치의학의 경계, 장애인 치과, 지역사회 구강돌봄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황금 노후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노후, 슬기로운 노후 준비를 위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사람들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을 묻는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같은 질문에는 익숙하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질문, 곧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평소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늘 닥쳐서야 그 말을 꺼낸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마지막 순간에는 환자의 뜻보다 가족의 불안이 앞서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이 판단을 대신한다. 의사는 진료 거부로 오해받지 않으려 조심스러워지고,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분위기는 치료를 계속하는 쪽으로 사람들을 몰아간다. 그 결과 임종은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두가 허둥대는 의료적 사건으로 끝나기 쉽다.

하버드 의대 아툴 가완디 교수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많은 사람의 마음에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생명을 조금 더 늘리는 일이 언제나 최선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더 중요한 것은 환자가 끝까지 자기 삶의 주체로 남는 일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좋은 죽음이란 치료를 포기하는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신이 원하는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그 답에 따라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죽음이다. 가완디는 의사가 죽음을 늦추는 기술만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 돌봄의 기술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완화의료병동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복도를 오가고 있다. (뉴스1DB) ⓒ 뉴스1 민경석 기자

우리 사회는 존엄사 문제를 더 정확한 언어로 다룰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에서 법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이 아니라 연명의료 결정이다.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은 2016년에 제정되고 2018년에 시행됐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 존엄한 죽음에 대한 요구 증가를 배경으로 마련됐다. 보건복지부도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에서 '누구나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받는 사회'를 정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약 330만 명,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이행은 누적 약 50만 명이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환자 본인 의사에 따라 이뤄진 비율도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연명의료 결정 제도는 자리 잡아가고 있어도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는 아직 충분히 성숙했다고 보기 어렵다.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은 가족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개입될 경우 본래의 취지와 달리 적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핵심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자기결정권을 마지막까지 지지하는 일이다. 특히 중증 치매나 중환자에게 심장 수술 같은 치료를 권할 때는, 수술이 가능한가보다 그것이 정말 환자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환자가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는지, 수술 뒤 섬망과 기능 저하, 고통스러운 중환자 치료, 긴 입원과 재활의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지, 또 환자가 평소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지키고 싶어 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는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나의 마지막을 남에게만 맡기지 않기 위한 자기결정의 기록이어야 한다.

또한 연명의료 결정은 의료비와도 무관하지 않다. 건강보험연구원 분석에서는 사망 30일 이전에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한 환자의 마지막 한 달 의료비가 일반 사망자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사회적 비용 절감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가 원하지 않는 치료 속에서 생의 마지막을 고통스럽게 보내지 않게 하는 일, 그리고 가족이 죄책감과 혼란 속에서 마지막 결정을 홀로 떠안지 않게 하는 일이다. 죽음 앞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치료가 아니라 더 나은 돌봄 시스템이다.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은 지난해 9월 9일 생명나눔주간행사의 일환으로 '연명의료결정제도 바로알기 캠페인'을 실시했다. (대전성모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와 연결된다. 죽음을 외면한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살면서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처럼 오히려 죽음을 준비할수록 마지막은 덜 두렵고 삶은 더 선명해진다. 준비된 노후란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뜻과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노후여야 한다. 오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마무리하는 것 또한 삶의 중요한 능력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오래 사는 법만이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함께 배워야 할 때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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