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 넘어 사람 세포로…식약처 '미니 장기' 한국發 표준 만든다

[식약처 사람들] 간 오르가노이드 독성시험법 OECD 국제표준화 추진
2030년 시험가이드라인 채택 목표…475억 투입해 동물대체시험법 연구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동물실험에 의존해 온 의약품·화학물질 안전성 평가 체계가 사람의 장기 특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 세포로 만든 '미니 장기'인 오르가노이드와 장기칩,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동물실험을 줄이면서 실제 인체 반응에 가까운 독성 정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 같은 변화에 맞춰 간 오르가노이드를 활용한 독성시험법의 국제표준화에 나선다. 국내에서 개발한 시험법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시험 가이드라인으로 발전시켜 국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안전성 평가법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동물실험에 의존해 온 안전성 평가, 사람 중심으로

오르가노이드는 줄기세포나 장기 유래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 일부를 모사한 세포 집합체다. 흔히 '미니 장기'라고 불린다. 사람의 세포로 만들어진 만큼 실제 인체 조직과 유사한 세포 구성과 구조를 갖고, 장기의 일부 기능도 재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을 줄이면서도 사람을 보다 잘 반영하는 안전성 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확대되고 있다"며 "오르가노이드, 장기칩,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접근법(NAMs)은 사람의 생물학적 특성을 보다 잘 반영할 수 있어 차세대 안전성 평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동물실험은 오랫동안 의약품 등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핵심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동물과 사람 사이에는 생리학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동물실험 결과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을 완전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실제 동물실험에서는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람에게 투여한 뒤 문제가 확인돼 개발이 중단되거나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의약품 사례도 보고돼 왔다.

식약처 관계자는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상호보완적으로 활용되면서 안전성 평가의 예측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하필 '간' 오르가노이드인가

오르가노이드는 간뿐 아니라 장, 뇌, 위, 췌장, 폐 등 다양한 장기를 대상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 가운데 식약처가 국제표준화의 첫 대상으로 삼은 것은 간 오르가노이드다.

간은 체내로 들어온 약물과 화학물질을 대사하는 핵심 장기다.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도 약물에 의한 간 손상은 중요한 안전성 문제로 꼽힌다.

식약처 관계자는 "사람의 간 반응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간 오르가노이드 기술은 차세대 독성 평가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2차원 세포배양은 단순한 세포 수준의 반응을 관찰하는 데 적합하지만,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반면 오르가노이드는 3차원 구조를 형성해 실제 장기의 세포 구성과 기능 일부를 재현할 수 있다.

장기칩(MPS)도 대표적인 NAMs 기술이다. 장기칩은 사람 세포를 작은 칩 위에 배양하고 혈액이 흐르는 환경이나 장기 간 상호작용 등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오르가노이드와 함께 동물실험을 보완할 수 있는 기술로 꼽힌다.

다만 식약처가 현재 오르가노이드에 우선순위를 둔 데에는 표준화 가능성과 기술 성숙도가 영향을 미쳤다.

식약처 관계자는 "장기칩은 미세유체공학, 센서, 재료공학 등 다양한 공학 기술이 융합된 플랫폼으로 실제 체내 환경을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칩 구조와 유체 흐름, 장비 성능 등 다양한 요소가 결과에 영향을 미쳐 국제적으로 표준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검증과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르가노이드는 사람 유래 세포를 이용해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재현할 수 있고 최근 기술 성숙도와 활용 사례가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며 "특히 간 오르가노이드는 약물 대사 및 간독성 평가 분야에서 규제 활용 가능성이 높아 국제표준화 대상으로 우선 추진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좋은 연구법' 넘어 '국제 표준'으로

오르가노이드가 실제 규제에 활용되려면 시험 결과를 어디서나 비슷하게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르가노이드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재현성과 상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검증은 여전히 과제다. 원료 세포의 품질부터 배양 과정, 완성된 오르가노이드의 품질 평가까지 표준화해야 할 부분도 많다.

식약처는 이를 위해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총 475억 원을 투입해 오르가노이드와 생체조직칩 등을 활용한 동물대체시험법 표준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 대상에는 심장·신장·신경계·호흡기계·피부·소화기계 등이 포함된다.

지난 2023년 4월 식약처가 제35차 OECD 시험지침프로그램 국가조정자 작업반 회의 참석해 발표하고 있는 모습. (식약처 제공)

간 오르가노이드 분야에서는 이미 국제표준화 절차도 시작됐다. 식약처가 제안한 iPSC(역분화줄기세포) 기반 간 오르가노이드 활용 표적 장기 독성시험 상세 검토보고서(DRP)는 2024년 OECD 신규 개발 프로젝트로 채택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간 오르가노이드 기반 독성시험법의 과학적 타당성과 규제 활용 가능성 등을 검토하는 OECD 상세 검토보고서 작성을 진행하고 있다"며 "2026년 11월 OECD 공식 프로젝트 제안서(SPSF) 제출을 목표로 국제표준화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2026년 SPSF 제출을 시작으로 2027년 프로젝트 채택, 2028년 검증연구 완료, 2029년 가이드라인 완성, 2030년 OECD 시험 가이드라인 채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OECD 시험 가이드라인은 단순한 연구 지침과는 의미가 다르다. OECD는 회원국 간 불필요한 중복시험을 줄이고 각국에서 생산된 시험자료를 상호 활용할 수 있도록 시험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OECD 시험 가이드라인으로 채택된다는 것은 해당 시험법의 과학적 타당성과 재현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있다"며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이 국제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국내 기업과 연구자들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시험법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법' 넘어 산업 경쟁력으로

오르가노이드는 독성 평가뿐 아니라 효능평가, 치료제 개발, 분자 진단, 재생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세계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더 인사이트 파트너스(The Insight Partners)에 따르면 글로벌 오르가노이드 시장 규모는 2022년 약 25억 달러에서 2027년 약 122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간·장·신장·췌장·폐 등 주요 장기 오르가노이드가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가노이드 주요 활용 영역별 글로벌 시장 규모. (식약처 제공)

식약처가 오르가노이드 표준화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험법으로 만들어야 국내 기술과 기업이 글로벌 규제 체계 안에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간 오르가노이드에 이어 심장·신장·신경계·호흡기계·피부·소화기계 등 다른 장기의 오르가노이드와 장기칩을 활용한 시험법 개발 및 국제표준화도 이어갈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오르가노이드와 장기칩, AI 등이 결합해 보다 정밀하고 예측력 높은 사람 중심의 차세대 안전성 평가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제표준화를 통해 국내 오르가노이드 기술이 실제 규제와 산업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며 "국내에서 개발한 오르가노이드 기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시험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표준화 연구와 국제 협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