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서 피 나던 아이도 활짝…알레르기 행진 끊어내는 '안심학교'
전국 4673곳 운영…응급키트·동화구연·교직원 교육까지
"질병 치료보다 예방"…학교 기반 건강 관리 모델 확산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콧물 흐르고 기침하길래 처음엔 단순한 감기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유치원 안심학교 교육을 들으면서 '우리 아이도 비염일 수 있겠는데?' 싶어 검사를 받아보니 진짜 비염이 맞더라고요. 얼마 전엔 일곱 살 첫째가 유치원에서 알레르기 동화 구연을 듣고 오더니 '엄마, 나 오늘 이런 거 배웠어!' 하고 신나서 이야기하더라고요. 아이도 부모도 알레르기를 숨기지 않고 긍정적으로 대하게 됐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신동아유치원에 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 김민지 씨는 지난 17일 뉴스1을 만나 '아토피·천식 안심학교'를 경험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단순히 아이를 맡기는 공간을 넘어 가정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한 알레르기질환까지 함께 살피고 관리해 주는 건강 안전망 역할을 체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씨 가족의 경험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최근 들어 아토피피부염과 알레르기비염, 천식 등 알레르기질환을 겪는 아이들이 늘면서 학교와 유치원의 역할도 단순 돌봄을 넘어 건강관리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알레르기비염 의사 진단 경험률은 2005년 8.3%에서 2024년 20.9%로 2.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토피피부염은 3.3%에서 6.6%로, 천식은 2.1%에서 3.4%로 늘었다. 특히 19~29세 연령층에서는 증가세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유아기와 소아청소년기에 시작된 알레르기질환이 성장 과정에서 비염과 천식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알레르기 행진'(Atopic March)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조기 예방과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아이들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는 알레르기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응급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생활공간으로 꼽힌다. 질환을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위험 요인을 관리하고 올바른 건강 습관을 형성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에 질병청은 전국 유치원·어린이집·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아토피·천식 안심학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안심학교는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을 대상으로 알레르기질환 예방관리 교육을 실시하고 천식 발작이나 아나필락시스 같은 응급상황에 대비한 대응체계를 갖추도록 지원하는 학교 기반 건강관리 사업이다.
올해 지정된 안심학교는 전국 4673곳으로 2008년 18개소에서 시작한 사업이 18년 만에 전국 단위 예방관리 체계로 확대됐다. 안심학교에서는 환아를 파악해 관리하고 응급키트를 비치하는 한편 교직원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신동아유치원이 안심학교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도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 때문이었다.
김승현 신동아유치원 원장은 "과거 식품알레르기가 여러 가지 있는 원아가 있었는데 보호자가 유치원 식단에 맞춰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직접 준비해 보낼 정도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했다"며 "한 번은 아이가 실수로 유치원 음식을 한 입 먹어 교직원들이 크게 긴장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식품알레르기는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아토피피부염이 심한 아이도 있었다. 가려움 때문에 피부를 계속 긁어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날 정도였다. 김 원장은 "교사들이 보호자와 지속해서 소통하며 아이를 도왔지만 알레르기질환은 단순히 조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교직원들이 좀 더 전문적으로 알고 있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신동아유치원은 2024년 관련 공문을 통해 안심학교 사업을 접한 뒤 참여를 결정했다. 서울시 아토피·천식 교육정보센터의 지원을 받아 교직원 교육과 학부모 안내, 유아 대상 교육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운영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교직원들의 인식과 대응 역량이었다. 주윤미 교사는 "사업에 참여하기 전에는 알레르기질환이 있는 아이가 있으면 보호자께서 알려주시는 주의 사항을 중심으로 조심해서 관리했다면 지금은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어떤 상황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나필락시스 교육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주 교사는 "실제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교육받고 나니 막연하게 걱정하기보다는 '이런 상황이 생기면 이렇게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며 "교사들 사이에서도 대응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유아 대상 교육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안심학교에서는 동화구연과 체험활동 등을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을 진행한다. 학부모 김 씨는 "예전에는 알레르기라고 하면 특정 아이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교육을 듣고 나니 비염이나 아토피도 모두 연결된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며 "아이가 집에 와서 유치원에서 배운 내용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육 효과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 스스로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며 "알레르기를 숨기거나 특별하게 생각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알레르기질환 관리의 핵심이 병원 치료뿐 아니라 생활공간에서의 예방과 교육에 있다고 강조한다.
박지예 서울시 아토피·천식 교육정보센터 팀장은 "알레르기질환은 병원 진료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꾸준히 관리돼야 하는 질환"이라며 "특히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는 아이들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만큼 조기 발견과 응급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심학교는 단순히 교육자료를 배포하는 사업이 아니라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 모두가 알레르기질환을 이해하고 대응 역량을 높이는 사업"이라며 "결국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안심학교에서는 환아 파악과 관리, 응급상황 대비, 교육자료 비치, 학부모 상담 등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아토피·천식 교육정보센터는 학교 현장을 찾아 천식 발작과 아나필락시스 대응 교육, 응급키트 활용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질병청은 이러한 학교 기반 예방관리 체계가 알레르기질환뿐 아니라 다양한 만성질환 예방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안심학교 사업을 알레르기질환 관리에 그치지 않고 학교 기반 질병 예방관리 모델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소아청소년기에 형성된 건강 습관이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질병이 발생한 뒤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김 원장은 "이런 교육은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며 "매년 새로운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들어오고 교직원도 바뀌는 만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육과 자료 지원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심학교 참여 기관은 꾸준히 늘고 있다. 다만 아직 교육정보센터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도 있고, 현장에서는 보다 많은 학교와 어린이집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팀장은 "알레르기질환은 아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라며 "현장에서는 교육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만큼 더 많은 아이가 예방관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사업이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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